제주공항에서 14세 가출소년이 다른 사람의 탑승권과 신분증으로 비행기를 타는 일이 벌어졌다. 그런데 해당 비행기에는 탑승권을 잃어버린 승객도 함께 타고 있었다. 기내 직원이 이륙 전 우연히 이 사실을 발견하고 조치에 나섰지만, 이미 공항 보안에 구멍이 뚫린 뒤였다.
관계 당국에 따르면 22일 오후 3시 제주공항을 출발해 김포공항으로 향하려던 에어부산 비행기에서 한 승객이 ‘주운’ 탑승권으로 비행기를 타는 일이 발생했다.
문제의 승객은 가출신고가 돼 있던 제주 서귀포시의 14세 소년. 제주공항 3층 대기실에서 지갑을 주워 그 안에 있던 30대 남성(33)의 항공권과 신분증으로 김포행 에어부산 비행기에 몸을 싣는데 성공했다.
그 사이 지갑을 잃어버린 남성도 탑승권을 재발급받아 비행기에 올랐다.
소년의 행각은 이륙 전 기내 상태를 최종 점검하던 객실 승무원이 화장실에서 나오던 소년을 수상히 여기면서 드러났다.
에어부산 측은 그때서야 ‘같은 이름의 승객 두 명’이 타고 있던 사실을 발견하고 출발하려던 비행기를 다시 탑승교로 돌렸다.
이로 인해 비행기는 당초 도착 예정시간보다 한 시간 가량 늦은 오후 5시20분쯤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당시 비행기에는 승객 195명이 타고 있었다.
이번 해프닝의 전말은 이랬다.
에어부산에 따르면 신분증을 잃어버린 30대 남성은 발권 창구로 가 자신의 급박한 상황을 설명했다. 창구 직원은 키오스크 탑승권 발행 이력과 남성의 설명이 부합하고 기내 동명이인 없는 사실을 확인하자 남성이 공항 무인발급기에서 급히 떼 온 등본으로 탑승권을 재발급했다. 신분증 없이도 검색대를 통과할 수 있도록 ‘보안 팔찌’도 제공했다.
문제는 다음부터였다.
14세 소년이 자신보다 19살이나 많은 33세 남성의 신분증을 들고 출발장 검색대에 섰는데 통과가 된 것이다. 검색대 직원이 승객의 실제 얼굴과 신분증을 꼼꼼히 대조하지 않은 데서 불거진 문제였다.
기내 탑승을 앞두고 소년을 걸러낼 기회는 또 있었다. 탑승 직전 탑승권의 바코드를 찍는 ‘BGR 스캔 기기’가 중복 입력을 인식하고 경고음을 냈을 때였다.
그러나 탑승구 직원은 소년보다 뒤에 탄 30대 남성의 탑승권을 재확인해 별다른 이상이 없자 기계 오작동으로 생각해 그대로 넘어갔다. 소년이 남성보다 먼저 탔기 때문에 직원은 티켓의 원래 주인인 남성의 신분만 재차 확인하게 된 것이다. 소년과 남성의 탑승 시각 차는 채 1분이 되지 않았다.
국토부는 사고 당일인 어제 사실 조사를 마쳤다. 국토부는 제주지방항공청이 에어부산과 한국공항공사 제주지역본부를 상대로 자세한 면담조사를 벌여 항공보안법 위반 여부를 발견하면 과태료 부과 등 행정처분을 내릴 예정이다.
국토부는 해당 소년에 대해 항공테러 혐의는 없던 것으로 결론 내렸다. 소년의 신분증 도용, 점유이탈물횡령, 업무 방해 등에 대한 혐의는 제주서부경찰서가 조사한다.
국토부는 오늘 중 이에 대한 후속 대책을 내놓을 예정이다.
한편 국토부는 신분증이 있어야만 탑승이 가능했던 지침을 지난해부터 무인민원발급기 등·초본 제출시에도 국내선 비행기를 탈 수 있도록 제도를 완화했다. 무인민원발급기에 지문인식 절차가 있어 본인 확인 과정을 거친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