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쟁이”라면서 “기밀 유출”… 볼턴 회고록 진실 공방

입력 2020-06-23 08:15 수정 2020-06-23 11:21
볼턴, 트럼프엔 ‘악감정’… 문 대통령엔 거부감
트럼프 “볼턴, 거짓말쟁이… 기밀 유출” 모순 지적도
트럼프, 대선 국면서 ‘중국 게이트’ 논란될 수도
文대통령, 난데없이 체면 구겨… 남북·한미관계 ‘부담’
볼턴, 메모광… “없는 일 지어내지 않았을 것” 주장도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5월 22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렸던 한·미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발언하는 장면을 존 볼턴(오른쪽)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서서 지켜보고 있다. AP뉴시스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 ‘그것이 일어난 방’이 한국과 미국을 강타했다. 볼턴 전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의 북핵 외교 저자세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민낯을 폭로했다.

악감정의 표출이냐 메모광의 진실이냐
볼턴 회고록으로 진실은 오히려 미궁 속에 갇혔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한국 정부 모두 볼턴 전 보좌관 회고록의 상당 부분이 거짓이라고 주장했다.

볼턴의 이력을 보면 이 같은 주장은 설득력 있다. 볼턴은 북한·베네수엘라 등 문제를 놓고 트럼프 대통령과 이견을 보이다 지난해 9월 10일 트위터로 해고를 당했다. 볼턴이 트럼프 대통령에 악감정을 품고 회고록으로 복수를 가한 것이라는 분석은 그래서 나온다.

또 볼턴은 북한이 비핵화 의지가 없다고 보고 북·미 정상회담 등을 포함한 북핵 외교에 비판적인 입장을 버리지 못했다. 볼턴 입장에선 북한 설득에 주력했던 문재인 대통령을 못마땅하게 느꼈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그러나 볼턴은 평소에 ‘메모광’으로 불렸던 인물이다. 또 백악관은 볼턴 회고록이 출간되기 전, 기밀 유출과 관련한 검열 절차를 거쳤다.

볼턴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기고한 글에서 미국 정부의 검열 제도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 자신의 대선 승리를 도와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던 발언의 정확한 표현을 회고록에 쓰지 못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은 22일(현지시간) “볼턴이 없는 일을 지어내지는 않았을 것”이라면서도 “볼턴의 ‘매파’적 선입관이 팩트 해석에서 오류를 낳았을 가능성은 있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6월 30일 판문점 남측 지역인 ‘자유의 집’ 앞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AP뉴시스

‘거짓말쟁이’라면서도 ‘기밀 유출’… 모순된 비판 지적도
그러나 볼턴 회고록에 대한 비판이 모순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볼턴 회고록이 시중에 판매되기 전날인 22일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볼턴은 지독히 무능하며 거짓말쟁이인 것으로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판사의 의견을 보라”면서 “기밀 정보(Classified Information)”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법원이 지난 20일 이미 회고록이 언론사 등에 퍼졌다는 이유로 볼턴 회고록 출간을 금지해달라는 법무부의 요청을 기각하면서도 기밀 공개로 국가안보를 위험에 빠뜨릴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부분을 지적한 것이다.

하지만 거짓말쟁이라고 볼턴을 비난하면서도 기밀 유출을 주장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도 22일 볼턴 회고록과 관련해 “상당 부분 사실을 크게 왜곡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정 실장도 “정부 간 상호 신뢰에 기초해 협의한 내용을 일방적으로 공개하는 것은 외교의 기본 원칙을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2월 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렸던 북·미 확대 정상회담에서 존 볼턴(맨 왼쪽)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메모를 하고 있다. AP뉴시스

트럼프는 ‘중국 게이트’… 한국은 남북관계·한미관계 ‘서먹’
볼턴이 회고록에서 한·미 정상을 비판한 대목들은 엄청난 파장을 불러왔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을 비난한 대목은 미국 대선 국면에서 정치적 논란거리로 부상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6월 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렸던 미·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주석에게 자신의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고 볼턴이 주장한 대목이 대표적이다. 벌써부터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게이트’라는 공격이 시작됐다.

또 볼턴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6월 30일 판문점 북·미 정상 회동을 사진찍기용으로 활용했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볼턴은 “이는 트럼프 대통령은 개인 이익과 국가 이익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상처를 입었다. 볼턴은 회고록에서 문 대통령의 대북 접근법에 대해 ‘조현병적인 생각(schizophrenic idea)’이라고 막말을 퍼부었다.

또 판문점 북·미 정상 회동에 대해서도 문 대통령이 북·미 모두가 반대하는데 끼어들려고 애썼다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주한미군에 대한 비판적인 속내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볼턴은 한·일 갈등에 대해서도 “역사 문제를 일으킨 것은 일본이 아니라 문 대통령”이라며 “나(볼턴)의 관점에서는 한국의 다른 정치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문 대통령이 국내 상황이 힘들 때 일본을 이슈화하기 위해 애썼다”고 비판적 시각을 드러냈다.

볼턴의 폭로로 남북 관계와 한·미 관계 모두 껄끄러워진 것이 한국으로선 부담이다.

그러나 워싱턴의 다른 외교 소식통은 “볼턴은 남·북·미 모두에게 환영 받지 못했던 인물이라 한반도 문제에 대해선 볼턴 회고록의 파장이 미약할 수 있다”면서 “다만, 북한이 볼턴 회고록에 어떤 반응을 내놓을지가 변수”라고 말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