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가던 연인에게 흉기를 휘둘러 남성을 살해하고, 여성을 다치게 한 50대 남성이 재판에서 자신은 살해 의도가 없었다며 미필적 고의를 적용해 달라고 요청했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이대연 부장판사)는 22일 오전 살인·특수상해 혐의로 구속기소된 배모(54)씨의 3차 공판기일을 진행했다.
배씨는 설 연휴이던 지난 1월 25일 새벽 서울 용산구 효창동에서 길을 가던 연인과 시비가 붙자 화가 나 집에서 흉기를 가져와 연인을 따라가 남성 A씨를 살해한 혐의로 구속돼 재판에 넘겨졌다. 배씨는 또 A씨와 함께 있던 연인 B씨를 폭행해 눈 주변이 함몰되는 골절상을 입힌 혐의도 받는다.
검찰에 따르면 배씨는 자신의 집 앞에서 A씨와 B씨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일부러 A씨에게 다가가 어깨를 두 차례 밀치며 시비를 걸었다. 이후 A씨와 B씨가 돌아가자 배씨는 자신의 집에서 흉기를 챙겨 이들을 쫓아가 A씨와 몸싸움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A씨는 배씨의 흉기에 흉부를 관통당해 숨졌다.
이에 대해 배씨는 재판에서 “바닥에 넘어지면서 흉기를 수직으로 들었는데 피해자 A씨가 흉기 쪽으로 넘어져 찔린 것”이라며 “피고인과 다툼이 있었던 것은 인정하지만 칼을 들고 살해할 의도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스스로 알아서 흉기를 피해서 넘어져야 하는 데 하필 피고인이 들고 있는 흉기 위로 넘어져 흉부가 관통한 것이냐”며 “피해자가 운이 없었다는 말이냐”고 되물었다.
이에 배씨는 “재수가 없었다는 것은 피해자에게 엄청난 모욕이라서 그건 아니고 원인 제공자는 저다”라면서도 몸싸움이 심하게 일어났을 뿐 재차 자신은 살해 의도가 없었음을 주장했다.
이어 배씨는 “예전 기술원에서 특수용접을 1년간 배웠고 금속에 대해 6개월간 배웠는데 과도랑 식칼 같은 경우는 뼈를 절단할 수 없다고 배웠다”며 “저보다 키 큰 사람의 뼈를 잘라서 관통할 정도면 칼을 위로 들어야 하지 않겠나. 그런데 CCTV에는 그런 게 하나도 없다”고 주장했다.
이날은 검찰의 구형이 있는 결심공판이었지만 배씨 측이 살해 의도가 없었다며 공소사실과는 다른 의견을 내면서 재판부는 다시 결심공판을 열기로 했다.
앞서 배씨는 3월20일 열린 첫 재판에서는 공소사실은 전부 인정한 바 있다. 그러나 배씨는 ‘극도로 화가 나 집에 가서 흉기를 잡은 것까지는 기억이 나지만, 그 이후 피해자를 쫓아가 찌른 것은 기억나지 않는다’며 자신이 심신미약 혹은 심신상실 상태였음을 주장했다.
그러면서 배씨는 ‘개인적으로 칼을 들고 쫓아가는데 도망가지 않고 신고한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발언을 해 원성을 사기도 했다.
배씨에 대한 결심공판은 다음 달 20일 오전 10시30분에 서부지법에서 열린다.
송혜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