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부르는 금리 인상의 역설

입력 2020-06-22 17:57 수정 2020-06-22 17:59

금융시장 과열을 잡기 위해 정책금리를 올리면 금융위기 확률이 그보다 더 큰 폭으로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 안정을 목표로 금리 인상을 추구하는 ‘매파’ 통화정책이 역설적으로 금융 안정성을 해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모리츠 슐라릭 독일 본대학 경제학과 교수 등은 최근 ‘바람에 기대기(Leaning against the wind)와 위기 위험’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유럽경제정책연구센터(CEPR) 보고서에서 과거 금융 과열기 금리 인상이 금융위기 발생 확률을 낮추기보다 오히려 높였음을 강조했다.

‘바람에 기대기’는 금융시장이 과열 양상을 보일 때 금리 인상으로 금융 불안정을 막는 조치를 일컫는다. 슐라릭 교수 등은 미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등 17개 선진국 데이터를 활용해 금융 과열에 대응하는 통화 긴축정책이 금융위기 발생 확률과 강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했다.

신용 과열 상황에서 정책금리를 1% 포인트 올리면 다음 해 금융위기 위험이 2% 포인트 상승했다. 연구진은 “금리 인상이 단기적으로 (금융)위기 위험을 증폭시킴을 시사한다”며 “전체 표본의 연간 평균 위기 위험이 3.4%라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신용총액과 자산가격이 함께 폭등하는 시기 1% 포인트 금리 인상은 이듬해 금융위기 발생 확률을 4% 포인트 높였다. 금융 과열이 두드러질수록 금리 인상이 금융위기를 더욱 자극할 수 있다는 뜻이다. 신용 과열기에는 금융위기 위험이 이미 높아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1% 포인트 금리 인상은 4.8%인 연간 금융위기 가능성을 약 10%로까지 끌어올린다고 연구진은 덧붙였다.

증시나 집값 폭등을 억제하기 위한 1% 포인트 금리 인상은 최장 2년간 금융위기 위험을 6~8% 포인트 증가시켰다. 신용과 증시가 함께 과열될 때 평균 금융위기 발생 확률은 4.7%로 추정됐다. 신용과 주택시장이 동시에 들썩일 때는 이 확률이 5.2%로 더 높았다. 이런 상황에서 정책금리를 1% 포인트 높이면 금융위기 발생 가능성은 10% 이상으로 높아진다.

시장 과열 초기에 금리 인상을 서둘러 단행하는 경우에도 금융위기 위험은 낮아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위기로 감당하게 되는 경제적 비용이 줄지도 않았다. 금융위기 발생 이후 5년간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금리를 인상하든 안 하든 기존 추세보다 8%가량 줄었다.

연구진은 “정책금리 인상은 최대 2년간 금융위기 위험을 증가시켰다”며 “이 단기적인 효과가 중기적으로 위기 위험을 낮추거나 위기 강도를 줄여 보상받는다는 증거는 거의 없다”고 서술했다. 이어 “우리 연구 결과는 거시경제정책이나 통화정책이 금융 취약성을 강화하는 데 더 적합한지에 대한 논쟁에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고 자평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