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가계·기업들이 ‘현금 확보전’에 뛰어들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 장기화에 따른 경기 침체에 대비하는 차원에서다. 투자를 결정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기업들은 비용 절감이나 자산 매각, 주식·채권 발행 등 유동성 확보 방안을 총동원하는 분위기다.
21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의 시장조사업체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글로벌마켓 인텔리전스 조사 결과, S&P500 편입 기업들의 현금 보유 및 단기투자 규모는 지난 1분기 기준으로 13.87%였다. 지난해 4분기(4.07%)에 비해 3배 가량 급증했다.
패스트푸드점인 맥도날드는 48억 달러 규모의 채권을 발행했다. 총 부채가 10% 늘었고 1분기 현금 보유액은 45억달러를 기록했다. 인텔은 104억 달러 채권 발행을 통해 부채를 35% 끌어올리는 대신 현금 77억달러를 확보했다. 힐튼호텔도 호텔 마일리지포 인트를 팔아 10억달러를 마련하는가 하면 15억달러를 현금으로 차입했다.
2분기 실적 발표 시즌이 되면 이 같은 움직임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코로나19 여파가 본격적으로 반영되기 때문이다. 기업의 현금 확보는 불확실한 경기침체기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이다. 자금경색 상황에서 기업의 보호막이 되기도 하며, 경기가 회복할 경우 즉각 투입할 수 있는 ‘실탄’이 되기도 한다.
현금 확보가 기업의 장기적인 성장에 유리하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영국은행(BOE) 보고서에 따르면 2008년 금융위기에 접어들기 전 현금을 충분히 쌓아두었던 기업들은 위기도 잘 버텨냈고, 회복기에는 투자도 확대해 시장점유율 및 이윤을 높일 수 있었다.
기업들의 현금확보 등으로 미 은행 예금보유액이 사상 처음 2조 달러(2419조원)를 돌파했다. 미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에 따르면 미 은행들에 예치된 예금 잔액은 1월 이후 2조달러 늘어났다. 4월 한 달에만 8650억달러 증가했다.
은행들의 예금이 늘어난 데는 ‘셧다운’에 따른 소비 감소 줄인 영향도 있다. 미 경제분석국에 따르면 개인 저축액은 지난 4월 33% 증가해 역대 최고 증가율을 기록했다. 개인 소득은 같은 달 10.5% 증가했다. 이는 정부의 실업보험 수당과 1200달러 규모의 현금 지급액이 영향을 줬다. 대형 은행들이 대출에 신중해진 것도 현금이 늘어나는 이유로 꼽힌다.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