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공모 서류도 내지 않고… 문예위 낙하산 사업 너무해

입력 2020-06-22 16:27 수정 2020-06-24 09:46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문예위)는 정부 예산으로 문화예술의 창작과 국제 교류를 지원하는 공공기관이다. 정부 부처가 그렇듯 문예위 역시 연말에 다음 해의 예산 편성 계획을 국회에 제출하고 심의를 받는다. 이 과정에서 국회 발 끼어들기 사업이 고착화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이 됐다.
서울국제무용콩쿠르 포스터.

국민일보는 22일 지난 20대 국회 활동 기간인 2017∼2020년 문예위 연간 사업계획 가운데 국회 지정 사업 내역을 입수했다. 자료에 따르면 2017년 독도사랑축제 등 4개 사업에 9억5000만원, 2018년 서울K-팝 공연 등 5개 사업에 10억5000만 원, 2019년 부산국제매직페스티벌 등 6개 사업에 22억8000만원, 2020년 허황후스토리 창작 오페라제작 등 6개 사업에 20억6300만원 등 4년간 총 63억4300만원이 국회 지정 사업에 투입됐다. 2019년의 경우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요청한 서울국제공연예술제가 들어 있어 이를 빼면 실질적 국회 지정 사업은 4년간 총 53억5300만원으로 집계된다.

이런 국회 지정 사업은 예산을 증액해 편성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2019년의 경우 공모 사업 예산을 삭감한 채 이들 사업에 정부 돈을 몰아준 것으로 조사됐다. 문예위 공모 사업이 건당 5000만원∼1억원인 경우가 많아 이 돈이면 최소 12∼13개 단체가 공모 기회를 뺏긴 셈이라고 할 수 있다.
독도사랑축제 싱가포르 공연 포스터.

문예위는 주로 순수예술 분야를 지원한다. 그런데도 국회 지정 사업은 마술, 아트페어, 트로트, K팝, 콩쿠르, 아트페어 등에 지원됐다. 문예위 관계자는 “예산을 편성할 때 사업 타당성 검사를 하는데, 이런 사업은 국회 심의 과정에서 갑자기 치고 들어온 것이라 문예위와 사업 성격이 맞지 않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부산국제매직페스티벌 행사 포스터.홈페이지 캡처.

문예위는 공모를 통해 지원 사업을 선정한다. 이들 국회 지정 사업은 ‘금배지 찬스’ 덕분에 이 과정이 생략될뿐더러 사후 평가도 소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종의 낙하산 사업인 것이다. 한마디로 국회의원들이 예산 심의권을 무기로 표밭 관리를 위한 지역구 민원이나 선심성 행사 등에 문예위 예산을 끌어들이고 있는 셈이다. 총선이 있었던 2020년 국회 지정 사업이 평년의 배 수준으로 증가한 것은 이런 의구심을 뒷받침한다.

국회 지정 사업은 통상의 공모 사업보다 지원 금액도 커서 최소 1억원에서 4억, 5억원씩 뭉칫돈이 배정됐다. 특히 서울국제무용콩쿠르, 독도사랑축제 등은 부실한 운영과 내용에도 불구하고 계속 지원받고 있어 그 배경에 의구심을 자아낸다. 독도를 세계에 알리는 목적의 독도사랑축제는 (사)라메르 에릴이 운영하며 현 대표는 외교부 고위 관리 출신이다. 서울국제무용콩쿠르는 ‘국제’에 걸맞지 않은 운영으로 여러 차례 지적을 받아왔지만 개선되지 않았다.

미술기획자 A씨는 “문예위 기금 사업 공모하려면 전시 리서치, 작가 섭외 등에 2, 3년은 매달려야 한다”며 “게다가 1억원은 꿈도 못꾸는 금액”이라고 말했다. 문화계 관계자는 “공모 서류도 내지 않고, 한 번도 아니고 몇 차례에 걸쳐 수억원의 나랏돈이 지원되는 것은 일종의 ‘국회 발 화이트리스트’라고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