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서 코로나 격리 20대 여성 극단적 선택한 듯(종합)

입력 2020-06-22 15:22 수정 2020-06-22 17:18
22일 오전 9시 15분께 제주도 인재개발원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와 접촉한 여성 자가격리자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신고가 경찰에 들어왔다. 연합뉴스

22일 제주에서 코로나19 확진자와 접촉해 시설격리 중이던 20대 여성이 숨졌다. 격리시설에 혼자 머물러 온 만큼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사망자는 우울증을 동반한 공황장애를 앓고 있었다. 우연히 제주도 보건당국이 이 사실을 알게 됐지만 별다른 도움은 주지 못했다. 타인에 의해 일상을 침해받았고 어쩌면 자신도 감염되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누군가에 큰 충격이 될 수 있는 만큼 격리 대상자의 기저질환과 심리 상태에 대한 사전 조사와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오전 9시15분 제주도 인재개발원에서 코로나19 격리 대상인 20대 여성 A씨(26)가 숨진 채 발견됐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제주도 보건소 관계자가 격리자에 대한 모니터링차 연락을 했는데 수차례 전화를 받지 않아 현장을 찾은 결과 의식이 없는 A씨를 발견했다.

신고 접수 6분 만에 119와 경찰, 보건소 관계자가 현장에 도착해 응급조치를 실시했으나 오전 9시46분경 사망했다. 현장 상황은 그녀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됐다.

서울 거주자인 A씨는 지인 B씨와 지난 18일 관광차 제주로 들어왔다. 방글라데시 국적 유학생 확진자의 기내 접촉자로 분류돼 금요일인 19일부터 제주지역 임시생활시설에서 격리에 들어갔다. 지인 B씨는 옆방에서 격리 중이었다. 그리고 격리 3일째인 22일 오전 사망했다.

A씨는 사망 직전까지 공황장애 치료제를 복용하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의 한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치료를 받아온 것으로도 드러났다.

제주도 관계자에 따르면 A씨가 복용한 약물은 공황장애 치료제로서 A씨가 꽤 오랫동안 이 질환을 앓아온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A씨는 제주도로부터 별다른 조치를 받지 못했다. 코로나19 대응 지침에 격리 대상자의 질병에 대한 별도 관리 지침이 없기 때문이다. 입소 전 기저질환을 파악할 이유가 없으니, 우연히 병력을 알았더라도 대응할 이유도 없었다.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가 일선 지자체에 파급한 ‘접촉자 격리 시설의 감염병 관리 지침(2판)’에는 시설격리자에 대해 ‘입소자 건강관리 수칙’을 ‘전달’하도록만 되어 있다. 건강관리 수칙에는 만성 질환자가 약 대리처방을 요구하면 보건당국이 응할 수 있다는 내용만 들어있다.

실제 제주도 보건당국은 A씨 사망 전 그의 병력을 알 기회가 있었다. 시설 입소 다음날인 20일 A씨가 자신의 정신 질환과 관련한 약이 떨어졌다며 대리처방을 보건소 측에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건당국의 의무는 ‘약을 구해주는 것’까지였다.

A씨에게 이번 여행은 매우 당황스러운 상황의 연속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관광차 들른 제주에서 2주간 꼼짝없이 ‘갇히게’ 됐고 일정은 엉망이 되어 버렸을 것이다. 자신도 감염됐을지 모를 불안감, 낯선 곳에서 보름간 혼자 버텨야 하는 상황 역시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정신건강 전문의는 격리라는 상황이 당사자를 위험한 상황으로 내몰 수 있다고 경고한다.

강지언 제주도의사협회장(정신건강 전문의)은 22일 오전 A씨 사망과 관련한 브리핑에서 “코로나19로 인한 우울감은 격리 당사자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각계 각 층에 일어날 수 있다”며 “이들에 대한 적극적인 돌봄과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공황장애 환자의 경우 여분의 약을 목숨처럼 가지고 다니는데 A씨가 왜 약을 적게 가져왔는지는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A씨가 사망한 제주지역 임시생활시설에는 20여명의 격리 대상자가 입소해 있다.

제주도는 지인 B씨를 포함해 이번 일로 입소자들이 받았을 충격이 상당할 것으로 보고 시설 이동 및 상담 희망 여부를 조사해 대응해나갈 방침이다.

A씨의 코로나19 검체 검사 결과는 음성이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