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이른바 ‘박사방’에서 아동 성착취물을 제작·배포한 조주빈(25·구속기소)씨 등 38명을 범죄단체 조직원으로 특정했다. 조씨를 비롯한 핵심 조직원 8명은 범죄단체 조직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단순한 음란물 공유를 넘어 이익 배분 등 경제적 활동을 벌였고, 조씨에 대한 절대적 지지 등 다양한 내부 규율이 있었던 점이 근거가 됐다.
서울중앙지검 디지털 성범죄 특별수사 태스크포스(TF)는 조씨와 ‘부따’ 강훈(19·구속기소)씨, ‘태평양’ 이모(16)군 등 8명을 범죄단체 조직·가입·활동 혐의로 기소했다. 나머지 5명은 ‘김승민’ ‘랄로’ ‘도널드푸틴’ ‘블루99’ ‘오뎅’이라는 텔레그램 닉네임으로 활동했다. 검찰은 또 다른 조직원 30명에 대해서는 추가 수사를 벌이고 있다. 조씨 등은 2019년 9월 ‘박사방’이라는 범죄집단을 조직하고 아동·청소년 16명을 포함해 여성 74명의 성착취물을 제작·유포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지난 3~6월 조씨 등 피의자들과 피해자들을 총 98회 조사했다. 범죄단체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박사방 개설 과정 및 회원모집 방법, 운영방법과 내부규율 등을 종합적으로 조사했다. 검찰은 조씨가 구치소에서 직접 그렸던 조직도와 텔레그램 채팅 화면, 조씨 등의 피의자 조서 등을 근거로 박사방 조직 구조와 특성을 밝혀냈다.
검찰은 박사방이 피해자 물색·유인 역할, 성착취 역할, 성착취 영상물 유포 역할, 성착취 수익금 인출 역할 등 크게 4조직으로 구분된다고 봤다. 검찰은 후원금 제공과 이익 배분이라는 경제적 활동을 매개로 박사방 조직이 구성됐다고 판단했다. 조씨를 중심으로 38명의 조직원들이 각자 역할을 분담해 범행을 실행했다는 것이다. 총 74명의 피해자들을 상대로 1인당 평균 수십여개의 성착취물을 제작·유포했고, 유포 사실이 확인된 성착취물만 1000개를 넘는 등 피해가 막심했다고 검찰은 판단했다.
실제 검찰이 파악한 박사방의 규율은 여느 범죄단체들과 크게 다를 게 없었다. 조직원들이 활동한 ‘시민방’은 가입시 일정 홍보 활동량 달성이 필요하다. 만약 탈퇴할 경우 이른바 ‘박제’라는 방식으로 보복이 이뤄진다. 박사방을 배신했다며 탈퇴한 조직원의 주민등록증 사진이나 신체 노출 사진 등 신상을 공개하는 것이다. 또 조씨는 강씨가 검거되자 태평양 이군을 가입시켜 대체하는 등 분업 체계도 확립돼 있었다. 경찰·언론의 추적을 피하고자 속칭 ‘대피소’를 포함해 52개 이상의 방을 운영하기도 했다.
조씨는 조직의 ‘두목’처럼 두려움의 존재로 군림했다. 박사방에는 눈팅(눈으로만 채팅을 보는 것) 금지, 잠수(연락이 되지 않는 것) 금지, 적대적 그룹방 활동 금지, 활동 시간 공개, 박사(조씨)에 대한 절대적 지지 및 비난 금지 등 다양한 내부 규율이 있었다. 또 강씨가 검거되자 ‘부따 장례식’ 그룹방을 개설해 그리움을 표시하는 메시지를 작성하게 했다. 박사방 공범인 ‘이기야’ 이원호(19·구속기소)씨가 입대하자 ‘청운의 꿈 이기야’ 방을 만들어 환송 메시지를 만들기도 했다. 또 박사방을 취재하는 기자의 자녀 사진을 구한 다음 사진을 공개하고 ‘박사나라 시민 이상 계층 건드리는 XX는 시간 내서 잡는다’는 경고성 메시지를 올리기도 했다.
검찰은 범죄단체 혐의 적용을 통해 박사방 일당들에게 죄에 상응하는 처벌을 묻겠다는 방침이다. 검찰 관계자는 “핵심 조직원들이 인격 살해 수준의 범행을 일종의 유희로 여길 정도로 집단적 폭력성을 띠고 있었다”며 “피해자들의 인권과 명예를 철저히 짓밟은 전세계 유례가 없는 신종 성범죄”라고 지적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