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미사일 직후 文대통령, 트럼프에 "미국 직접 북한 식량 지원해야"

입력 2020-06-22 12:58 수정 2020-06-22 15:06
국민일보,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 회고록 입수
지난해 5월 4일 북한 단거리 미사일 발사
트럼프 “(미사일 아닌) 대포로 불러라” 파장 축소
문 대통령, 트럼프에 “김정은 한미훈련 불만” 설명
트럼프 “미국, 유엔 통해 식량지원…북한에 알려달라”
하지만 미국의 대북 식량 지원 이뤄지지 않아

연합뉴스

북한이 단거리 미사일 여러 발을 발사한 직후였던 지난해 5월 7일 문재인 대통령은 한·미 정상 간 전화통화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미국이 직접 북한에 식량을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주장했다.

국민일보는 23일(현지시간) 출간 예정인 볼턴 전 보좌관의 회고록 ‘그 일이 일어났던 방’의 한반도 관련 주요 부분을 21일 입수했다.

북한은 지난해 5월 4일 강원도 원산에서 단거리 미사일 여러 발을 발사했다. 볼턴 전 보좌관은 당시 보고를 받고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시도했다.

두 번째 시도 만에 이뤄진 전화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진정하라. (별일 아닌 것처럼) 깎아내려라(play it down)”고 말했다고 볼턴 전 보좌관은 주장했다.

볼턴 전 보좌관은 세 번째 전화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정부의 성명을 원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다음 날엔 트럼프 대통령은 “그것(북한 단거리 미사일)을 대포(artillery)라고 부르라”고 말했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은 그가 나에게 한 약속을 깨기를 원치 않는다. 합의는 이뤄질 것”이라는 트위터 글을 올렸다.

볼턴은 한국 정부도 파장을 축소하기 위해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체들(projectiles)’이라고 불렀다고 지적했다.

북한이 2019년 7월 25일 강원도 원산 일대에서 동해로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하는 장면. 연합뉴스

같은 달 7일엔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한·미 정상 간 통화가 이뤄졌다.

문 대통령은 북한 미사일 발사의 심각성을 경시하려고 애썼다고 볼턴은 주장했다. 문 대통령은 또 한·미 연합군사훈련에 대한 김정은 위원장의 불만을 장황하게 설명했다고 볼턴은 썼다.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의 관계를 상실한 것으로 보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볼턴은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남북 간의) 단절을 문 대통령이 잘못으로 보지는 않았다. 다만, 무슨 일이 발생한 것은 분명해 보였다고 볼턴은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베트남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한과의 어떤 실질적인 대화가 많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문 대통령은 미국이 북한에 직접적으로 식량 지원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문 대통령은 한국이 유엔아동기금(UNICEF)이나 유엔 세계식량프로그램을 통해 북한에 식량을 지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미국이 북한에 식량을 직접 지원하는 방안을 제안했다고 볼턴은 주장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유엔 기구를 통해 (대북) 지원을 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완전한 축복을 전달함으로써 문 대통령을 놀라게 할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이런 제안을 문 대통령에게 했다는 사실을 북한에 알려 줄 것을 부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김 위원장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으며 시기가 좋기 때문에 강경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장담과는 달리 미국의 대북 식량 지원은 이뤄지지 않았다.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자신의 국가안보보좌관 취임 첫 날이었던 2018년 4월 9일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발언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AP뉴시스

볼턴은 회고록에서 자신은 북한에 대한 식량 지원을 막았다고 주장했다. 볼턴은 “(식량 지원이 이뤄지면) 북한은 ‘미사일을 쏘면, 공짜 식량을 얻을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릴 것”이라며 “이것은 또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협상 타결을 얼마나 애타게 원하는지를 보여주는 끔찍한 신호였다”고 회고록에 썼다.

볼턴은 당시 국가안보회의(NSC)의 매슈 포틴저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과 앨리슨 후커 한반도 보좌관에게 한국에 미국은 직접 (북한에) 식량 지원을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전달하라고 시켰다.

볼턴은 대북 식량 지원은 분배 과정에 대한 매우 조심스러운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2019년 봄과 여름에 더 많은 미사일을 시험했으며 이는 어떠한 보복조치도 없을 것이라는 김 위원장의 자신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볼턴은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9년 5월 9일 북한의 추가 단거리 미사일 발사가 있은 직후 “더 무거운 제재를 부과하라”고 말했다. 또 그 이후엔 “대규모 제재”로 격상하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아무 것도 공식적으로 밝히지는 않고 은밀히 지시했다고 볼턴은 주장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