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연 수요시위’ 28년 만에 소녀상 앞 자리 빼앗겼다

입력 2020-06-22 07:22
뉴시스

28년 동안 매주 수요일이면 옛 주한 일본대사관 정문 소녀상 앞에서 열렸던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시위가 보수단체의 맞불 시위로 장소를 옮기게 됐다. 이는 28년 만에 처음이다.

22일 경찰에 따르면 보수단체 자유연대는 이달 23일 자정부터 7월 중순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서울 종로구 중학동 옛 일본대사관 앞에 시위 신고를 해둔 상황이다. 우선 수위에서 밀린 정의연은 돌아오는 수요일인 24일 평화의 소녀상이 있는 원래 장소 대신 남서쪽으로 10m가량 떨어진 연합뉴스 사옥 앞에서 무대를 만들고 시위를 진행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자유연대의 반대 시위는 평화의 소녀상 근처에서 열린다. 최근 자유연대 등이 종로경찰서 인근에 상주하면서 매일 자정이 되면 시위 신고를 하는 터라 이런 상황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수요시위는 1992년 미야자와 기이치 당시 일본 총리의 방한에 앞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회원 30여명이 1월 8일 정오 일본대사관 앞에서 연 시위로 시작됐다. 첫 시위 참가자들은 “일본 정부가 위안부 강제연행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할 때까지 매주 수요일 낮 12시부터 1시간 동안 일본대사관 앞에서 항의 시위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후 28년 동안 같은 장소에서 매주 수요시위가 열렸다. 2011년 12월 1000번째 수요시위를 기념해 평화의 소녀상이 들어섰고 2015년 7월엔 일본대사관이 건물 신축을 위해 뒤편 빌딩으로 이전하는 등 주변 모습은 조금씩 달라졌지만 시위는 매주 수요일 정오마다 열렸다.

1995년 일본 고베 대지진 당시 자발적으로 시위를 열지 않았던 정도를 제외하면 수요시위가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지 않은 일은 없었다. 그동안 시위 취지에 반대하며 근처에서 야유하거나 ‘맞불시위’를 여는 사람도 있었지만 시위 장소를 선점한 전례는 없었다.

이희범 자유연대 대표는 “정의연은 시민들의 목소리를 듣고 시위를 중단해야 한다”며 “그게 아니라면 시민들이 두 시위를 보고 과연 누가 상식이 있는 자들인지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언제까지 일본 대사관 앞 시위 신고를 낼 것이냐는 질문에 이 대표는 “정의연이 각성하고 윤미향 의원이 사퇴할 때까지”라고 답했다.

이에 정의연 측은 “자유연대가 밤을 새워가며 시위 신고를 한다고 하는데 우리는 사람이 부족해 선순위 등록을 할 여력이 없다”며 “자유연대의 선량한 시민의식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수요시위가 자리를 빼앗긴 것은 어떤 면에서는 한국사회가 30년 전으로 후퇴했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