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초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 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비행기로 평양까지 데려다주겠다고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웃으며 “그럴 수 없다”고 답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대단한 그림이 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현지시각으로 오는 23일 공식 출간되는 존 볼턴 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 ‘그 일이 일어난 방 : 백악관 회고록’엔 지난해 2월28일 하노이 정상회담 후일담이 담겼다. 볼턴 전 보좌관은 자신이 배석했던 이 날 밤 확대 정상회담에서의 일화를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확대 회담이 시작되자 김 위원장에게 “참모들과 휴식시간에 어떤 얘기를 나눴냐”고 물었고 김 위원장은 “지금까지 논의됐던 것과 비교해 아주 새로운 제안을 갖고 먼 하노이까지 왔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만족을 못 하니 기분이 좋지 않다”고 답했다고 쓰여 있다.
당시 김 위원장은 전날 만찬에서부터 2일차 정상회담에 이르기까지 2016년 이후 모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를 해제하는 대가로 북한이 영변 핵시설을 포기하는 방안을 거듭 제안했다고 볼턴 전 보좌관은 설명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추가 제안을 요구했고 김 위원장은 영변 핵시설 포기가 북한으로서 얼마나 중요한지, 이런 구상에 미 언론에 얼마나 많이 실릴지 등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뭔가 더 내놓을 것이 없는지 계속 물으면서 대북 제재의 완전 해제보다 단 1%의 완화라도 요구하는 게 어떻겠냐고 식으로 예를 들었다고 전했다. 이를 두고 볼턴 전 보좌관은 “의심할 여지 없이 그날 회담에서 최악의 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협상 패키지’를 더욱 업그레이드하려고 노력하면서 미국을 타격할 수 있는 장거리 미사일 제거를 포함하는 안을 제시했다. 이 제안은 한국과 일본을 타격할 수 있는 중·단거리 미사일에 대한 한일의 우려를 명백히 무시한 것이라고 볼턴 전 보좌관은 지적했다. 당시 협상장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에게 의견을 물어봐 “북한의 핵무기, 생화학무기, 탄도미사일 계획과 관련해 포괄적인 기준선에 대한 선언이 필요하다”고 선을 그었다고 그는 주장했다.
당시 김 위원장은 북한 안보에 대한 법적인 안전 보장이 없다고 우려하면서 미국과의 외교 관계가 수립되지 않았음을 염려했다고 한다. 김 위원장이 ‘미국 전함이 북한 영애에 들어오면 어떻게 되는 것이냐’고 묻자 트럼프 대통령은 ‘내게 전화하라’고 답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협상이 계속 난항을 겪자 김 위원장은 평양에서부터 열차를 이용해 ‘먼 길을 왔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고 한다. 이에 트럼프가 “예정된 만찬을 취소하고 내 비행기로 북한까지 데려다주겠다”고 말했으나 김 위원장은 “그렇게 할 순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트럼프도 진심은 아니었다는 듯 “(실현된다면) 꽤 그럴듯한 그림이 될 것”이라고 마무리했다고 볼턴 전 보좌관은 전했다.
이 회고록엔 지난해 6월 30일 판문점 자유의 집에서 남·북·미 3국 정상의 극적 만남이 성사된 과정도 기록돼 있다. 볼턴 전 보좌관은 ‘문 대통령이 한국인들은 트럼프를 좋아하고 존경한다고 말하자 트럼프는 자신이 대통령이 된 뒤 한국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강연을 늘어놨다“고 썼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트위터를 통해 만나기로 합의한 것은 거대한 신호 같다’며 ‘아무도 김 위원장과 만나는 방법을 모른다’고 말했다”고 한 볼턴 전 보좌관은 “전 세계 언론이 주목하자 자신만이 아무도 만나는 방법을 모르는 김 위원장과 만나게 됐다며 우쭐해 했다”고 전했다.
“이 말을 들은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국이 김 위원장과 핫라인을 개설했지만 그건 조선노동당 본부에 있고 김 위원장은 전혀 거기 간 적이 없다’고 고백했다”고 쓴 볼턴 전 보좌관은 “문 대통령은 이어 ‘그 전화는 주말에는 작동하지 않는다’고 했다”고 번했다.
한국의 핫라인은 문 대통령의 여민관 집무실 책상 위에 있다. 남북 정상 핫라인은 2018년 3월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 대통령 특사단이 북한과 합의한 성과 중 하나다. 북한은 지난 9일 청와대 핫라인을 포함해 군이 가진 핫라인 등을 모두 폐기한다고 밝혔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