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지와 룰러의 서머 시즌

입력 2020-06-22 03:19 수정 2020-06-22 03:22

올해 젠지가 추구하는 게임 스타일은 뚜렷하다. 팬들이 흔히 ‘황부 리그’라고 극찬하는 중국 ‘LoL 프로 리그(LPL)’ 강팀들과 같은 공격적 스타일이다. 요새 스크림(연습 경기)에서는 그런 게임을 제법 완성도 높게 해낸다고 한다. 다만 실전에서는 아직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젠지는 21일 서울 종로구 LCK 아레나에서 열린 ‘2020 LoL 챔피언스 코리아(LCK)’ 서머 정규 시즌 두 번째 경기에서 KT 롤스터에 세트스코어 2대 1로 진땀승을 거뒀다. 승패와 별개로 경기력엔 아쉬움이 남았다. 젠지는 노련한 미드라이너 ‘쿠로’ 이서행의 트위스티드 페이트 운영에 휘둘려 유리할 때 스노우볼을 굴리지 못했다.

젠지 선수들도 이날 경기력에 대해 아쉬움을 내비쳤다. “싸워야 할 때 싸움을 걸지 못했고, 싸우지 말아야 할 때 싸웠다”는 게 경기 후 기자실을 찾은 ‘룰러’ 박재혁의 경기 총평이었다. 그는 “올 시즌 두 경기 모두 스크림 때보다 덜 싸웠고, 못 싸웠던 것 같아 아쉽다”고도 했다. 젠지는 지난 18일 DRX와의 시즌 첫 경기에서 1대 2로 패배한 바 있다.

박재혁에 따르면 젠지는 요즘 스크림에서 “눈만 마주쳐도 기분이 나빠져 싸움을 거는” 게임을 한다고 한다. 그리고 100번을 싸우면 99번을 이긴다고 한다. (경기 승패가 아닌 게임 내 전투 승패의 얘기다.) 오죽하면 “이즈리얼과 아펠리오스 중 어떤 챔피언이 더 낫다고 보나”라는 질문에 그가 “제가 어떤 구도로 붙어도 다 이겨서…”라며 말끝을 흐렸을 정도다.

하지만 스크림은 스크림일 뿐이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젠지는 LCK에서 담원 게이밍이나 설해원 프린스같이 호전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전투를 빼어나게 잘한다는 인상도 심지 못했다. 스크림과 실전, 두 무대 간 간극을 좁히는 게 젠지에 주어진 숙제다. 박재혁은 “실전에선 생각할 게 더 많아져 (경기력에) 차이가 생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젠지의 아쉬운 경기력과 직결돼 나오는 것이 박재혁의 불필요한 데스와 관련한 비판이다. 박재혁은 이날 KT전에서도 이서행의 궁극기 ‘운명’과 ‘카드 뽑기(W)’ 연계 등에 데스를 허용했다. 주력 딜러의 허무한 죽음에 팀은 스노우볼을 굴릴 동력을 상실했다.

스크림에서의 젠지는 “한 명이 ‘이길 거 같다’고 하면 다 같이 돌진하는 느낌”이라고 한다. 팀이 추구하는 색깔이 핏빛으로 바뀌면서 그는 이전보다 자주 상대의 위협에 노출되고 있다. 그렇지만 어떠한 상황에 놓이더라도 자신의 데스수를 최소한으로 줄여야 하는 게 원거리 딜러의 임무이자 숙명이다.

박재혁은 대규모 교전(한타)에서의 집중력 저하가 전보다 잦은 데스로 이어지고 있다고 복기했다. “원래는 내가 한타를 잘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엔 한타 집중력이 떨어지는 거 같다. 보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는 경기 도중 신경 써야 할 점이 예년보다 많아진 게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고 첨언했다.

박재혁을 프로페셔널한 선수라고 느낀 적이 두 번 있다. 첫 번째는 지난해 승자 인터뷰 상황에서였다. 경기가 자정께 끝났는데 숙소 복귀 후 솔로 랭크를 하러 갈 거라고 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연습하면 실력이 향상되는 걸 이미 체감해봤다. 그래서 안 할 수가 없다”고 답했다.

두 번째는 지난 시즌 ‘최악의 하루 보낸 룰러’라는 기사를 쓴 뒤였다. 강도 높게 비판한 선수를 바로 이튿날 만나는 건 기자로서도 껄끄러운 일이다. 그렇지만 이틀 뒤 만난 기사의 주인공은 “저는 상관 안 해요. 오히려 승부욕이 자극되고 좋아요. 신경 쓰지 말고 그런 기사 써주세요”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었다.

여러 관계자가 시즌 개막에 앞서 점쳤듯, 젠지의 서머 시즌 및 그 이후의 당락은 박재혁이 결정할 확률이 높다. 그는 올 시즌 목표로 결승 직행과 우승을 설정했다. 개인적으로는 ‘플레이어 오브 게임(POG)’ 포인트 누적 1위에 오르기로 정했다.

윤민섭 기자 fla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