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위기 중남미, 부정부패도 대유행… 의료품 사기에 횡령까지

입력 2020-06-21 17:18 수정 2020-06-21 17:35
볼리비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페루 남동부 푸노의 한 시장에서 지난 10일(현지시간) 코로나19 방역 작업 중인 시 담당자가 상인 옆을 지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중남미 국가들의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 수는 계속해서 늘고 있다. 하지만 이들 국가를 더욱 위기로 몰고 가는 건 그동안 곳곳에 존재해 왔고 지금도 바이러스처럼 번지고 있는 관료들의 부패다. 공무원과 기업인들이 개인의 부를 축적하기 위해 마스크와 소독제, 인공호흡기 등의 의료용품 가격을 두고 사기 행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중남미에서 코로나19와 관련된 각종 부패 범죄들이 기승을 부리면서 상황을 절망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지난달 볼리비아 보건부 관계자는 IME 건설팅이라는 업체로부터 인공호흡기 170개를 개당 2만8000달러(약 340만원)에 공급받는 계약을 체결했다. 제조업체가 매긴 제품 가격의 3배 수준이었다. 의료진은 인공호흡기를 받아들고 “코로나19 중증 환자를 치료할만한 품질이 아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미국 다음으로 코로나19 사망자 수가 많은 브라질에선 최소 7개 주의 정부 관료들이 팬데믹 위기 속에서 2억 달러(약 2400억원) 이상의 공금을 유용한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콜롬비아에선 100명의 정치 후원가들이 응급 의료용품을 빼돌린 댓가로 금품을 수수해 조사를 받고 있다.

페루의 내무장관과 경찰청장은 희석된 소독제와 불량 마스크를 구매해 경찰에 지급한 일과 관련해 사의를 표명했다. 검찰은 경찰과 공급업체 간 유착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 페루에선 1만1000명 이상의 경찰이 코로나19에 감염됐고 200명이 사망했다.

리마 지역 경찰 아르미욘 에스칼란테는 “우리는 사실상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했다”면서 “나와 동료들이 지급받은 종잇장처럼 얇은 마스크와 장갑은 금새 망가졌다”고 말했다. 에스칼렌테는 지난 4월 코로나19에 감염돼 3주 가량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그는 지금도 폐에 통증을 느끼며, 이야기할 때 금방 숨이 차오는 것을 느낀다.

최근 드러난 코로나19 관련 부패 범죄 중 가장 후안무치한 사건은 에콰도르에서 벌어진 ‘보디백(시체 운반용 주머니) 사건’이다. 지난달 에콰도르 검찰은 보건당국 공무원들과 공모해 일반 병원에 보디백을 정상가의 13배 수준으로 비싸게 팔아치운 범죄조직을 파악했다고 발표했다.

사건에 대한 수사는 권력의 상층부로 파고들었다. 압달라 부카람 전 에콰도르 대통령의 자택을 수색하자 불법 화기류와 함께 수천개의 마스크, 코로나19 진단키트가 발견됐다. 부카람 전 대통령의 아들인 달로 부카람은 보디백 사건을 벌인 범죄조직의 일원인 다니엘 살세도의 마이애미 자택에 최근까지 머무른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살세도가 소속된 범죄조직과 부카람 전 대통령, 그리고 부카람 전 대통령의 가족이 결탁해 2018년부터 국내 병원을 대상으로 폭리를 취하고 있었던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검찰은 이들이 지난해 개당 11달러에 불과한 보디백 수천개를 개당 148달러를 받고 한 병원에 팔아치운 사실도 확인했다.

부카람 전 태통령의 집에서 나온 코로나19 진단키트와 마스크가 과야킬의 테오도로 말도나도 카르보 병원에 공급될 예정이었다는 사실은 국민들을 분노케 했다. 과아킬은 에콰도르에서 가장 코로나19 피해가 큰 도시 중 하나다. 안치될 곳 없는 시신들이 병원 밖에 그대로 쌓여있거나 바나나 상자에 담기기도 한다고 NYT는 전했다.

테오도로 말도나도 카르보 병원에서 코로나19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 알렉스 비바스는 사건소식을 듣고 경악했다. 비바스는 “보호장구를 사는 데 써야 할 예산이 부당 거래에 쓰이고 있다”면서 “전방에 있는 의료진들은 너무나 끔찍해서 말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디아나 살라자르 에콰도르 법무장관은 “의료 시스템이 붕괴돼 사람들이 길에서 죽어나가고 있다”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있는 타인의 고통을 이용해 이익을 얻는 것은 비도덕적”이라고 비난했다.

부패 전문가들은 팬데믹이 중남미의 관료들이 공금을 빼돌릴 기회를 늘렸다고 분석한다. 여러 국가에서 위기 상황을 선포하면서 공공 계약에 관한 관리·규제도 마비됐고, 의회도 마비된 탓이다. NYT는 “중남미가 팬데믹의 진앙으로 떠오른 상황이지만 위기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잇단 부패 스캔들에 가려졌다”고 전했다.

반부패 비영리단체인 국제투명성기구의 에두아르도 보오르케스 멕시코지부장은 “그들(관료들)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이상적인 환경에 있다”면서 “투명성과 정보접근성은 거의 없고, 의회의 독립적인 감시는 전혀 없다”고 우려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