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검찰총장이 전문수사자문단을 소집해 이른바 ‘검·언 유착’ 의혹 사건의 기소 여부 판단을 듣기로 했다. 이번 사건이 언론의 취재 자유 영역과도 맞물려 있는 만큼 외부 전문가 의견도 들어보는 게 바람직하다는 취지다. 하지만 피의자 진정에 의해 이례적으로 자문단이 소집된 만큼 윤 총장이 사건에 연루된 최측근 검사장 감싸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검찰청은 채널A 이모(35) 기자가 제기한 진정을 받아들여 자문단을 소집하기로 전날 결정했다. 자문단의 의견은 앞서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신청했던 검찰수사심의위원회와 마찬가지로 권고적 효력만 갖는다. 심의위에 언론계, 시민단체 인사들이 포함되는 것과 달리 자문단은 검사, 법학 교수 등 법조계 전문가들로 구성된다. 이 기자 측 변호인은 자문단을 소집해달라는 진정을 내면서 “이번 사건은 법률 전문가들이 들여다보면 죄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 명쾌하게 나타날 것”이라고 밝혔었다.
대검은 ‘언론 취재 행위의 법적 한계’라는 예민한 주제를 다루는 만큼 전문가들의 심층 검토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번 사건은 이 기자가 이철 전 밸류인베스트먼트코리아 대표에게 취재에 응하라고 설득하는 과정에서 벌어졌다. 이 전 대표 측은 이 기자가 검찰 간부와의 친분을 내세우면서 취재에 협조하지 않으면 가족들도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취지로 협박했다고 주장한다. 이 기자 측은 이 전 대표 측이 ‘로비 장부’를 거론했고 취재 과정에서 일반적인 얘기를 한 것이지 협박이 아니라고 반박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검사 정진웅)는 앞서 이 기자를 강요미수 혐의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조사했다. 윤 총장의 최측근으로 지목된 A검사장의 휴대전화도 압수수색한 상태다. 대검찰청 일각에서는 수사가 균형 있게 진행되고 있지 않는 것 같다며 불쾌한 기류도 흐른다. 서울중앙지검이 A검사장을 겨냥하고 있는 것도 자문단 소집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 나온다.
A검사장은 이 기자의 취재 과정에 관여하거나 신라젠 수사팀을 연결해주려는 시도를 한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한 언론은 채널A 기자들이 지난 2월 A검사장을 만나 ‘신라젠과 여권 인사 로비 의혹’과 관련해 질문했고 A검사장은 “관심 없다. 신라젠 사건은 서민·민생 금융범죄”라고 대답했다는 내용을 보도하기도 했다. 서울중앙지검은 이에 대해 21일 “확보된 증거자료 중 관련자에게 유리할 수 있는 부분만 선택적으로 보도했다. 수사의 공정성에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검찰은 이번 사건이 MBC 보도로 지난 3월말 처음 불거진 이후 수차례 내부 갈등을 빚어왔다. 한동수 대검 감찰부장은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사건을 감찰하겠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가 논란을 빚었다. 한 부장은 감찰을 일방 통보한 게 아니고 검찰총장과 대검 차장에게 수차례 대면보고를 했다고 공개 반발했었다. 윤 총장은 이후 서울중앙지검에서 의혹을 수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윤 총장은 서울중앙지검이 채널A 본사 압수수색을 시도하자 수사가 균형 있게 진행돼야 한다고 질책성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MBC는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가 신라젠에 투자했다는 의혹을 보도했다가 고소당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MBC 수사와 관련해 뚜렷한 진전은 없는 상황이다. 사건과 관련해 검찰 내 ‘친문 인사’로 꼽히는 이성윤 서울중앙지검과 윤 총장의 시각 차이가 드러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윤 총장이 이례적으로 ‘자문단 소집’ 카드를 꺼낸 만큼 결과에 따라 리더십에 상처를 입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자문단이 강요미수 혐의가 성립된다고 판단할 경우 무리하게 측근 감싸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될 수 있다. 여권을 중심으로 윤 총장에 대한 사퇴 압박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윤 총장의 부담도 더 커질 수 있다. 다만 불기소 의견이 제시될 경우 수사가 형평성 있게 진행돼야 한다는 윤 총장과 대검찰청 지휘부 입장에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자문단 회의는 다음달 초쯤 열릴 전망이다. 자문단 구성원은 대검 담당 부서와 수사팀이 추천하면 검찰총장이 위촉한다. 앞서 문무일 전 검찰총장은 2018년 강원랜드 채용비리 사건에 외압을 행사한 의혹을 받은 당시 김우현 대검 반부패부장 사건을 자문단에 맡겼었다. 자문단에서 불기소 의견이 나왔었고 수사팀이 권고를 따라 사건을 마무리했다.
나성원 허경구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