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미숙한 코로나19 대응, 측근 비리 등으로 정치적 위기에 몰린 가운데 돌연 본인의 임기 종료 전까지 평화헌법을 개정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아베 임기 중 개헌은 물 건너갔다’는 관측이 우세한 상황이라 국면 전환용 카드로 풀이된다.
아베 총리는 20일 저녁 인터넷방송 아베마TV에 출연해 “자민당 총재 임기가 1년 3개월 정도 남았기 때문에 어떻게든 임기 중에 (헌법 개정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까지 가고 싶다”고 밝혔다. 집권당 대표가 총리를 맡는 의원내각제 국가 특성상 아베 총리의 임기는 내년 9월 만료된다.
아베 총리는 개헌 관련 국민투표법 개정안 논의가 국회에서 지지부진한 것과 관련해 “민주주의에서 전원 합의가 이뤄지면 좋겠지만 그것은 무리”라며 “그때는 다수결로 결정해서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총리가 전격적으로 개헌 논의를 진척시킬 수 있도록 중의원을 해산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모든 정치인은 모종의 싸움 속에 산다. 의회 해산은 항상 의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투표법 개정안 논의가 야당의 적극적인 반대 탓에 국회 헌법심사회 단계에 멈춰있다며 책임을 돌린 것이다.
하지만 아베의 굳은 의지 표명에도 불구하고 지난 17일 일본 정기국회에서 국민투표법 개정안 처리가 이미 무산된 터라 임기 내 개헌은 어려워졌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야당 반대가 극심한 가운데 개헌을 위해서는 ‘여야 협의를 통한 개헌 원안 제출’ ‘중의원과 참의원에서 각각 전체 의원 3분의 2 이상 동의로 발의’ ‘발의 후 60~180일 이내 국민투표 등 개헌 절차’를 차례로 밟아야 하는 데 이를 아베 임기 내 끝내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특히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에 대한 불만이 높은 상황에서 구로카와 히로무 전 도쿄고검장의 ‘마작 스캔들’ 낙마, 가와이 가쓰유키 전 법무상 부부의 금품선거 혐의 체포 등 측근 비리까지 연이어 겹치며 개헌 추진 동력마저 상실한 상태다.
상황이 이런데도 아베 총리가 임기 중 개헌 의지를 다시 강조하고 나선 배경에는 ‘전쟁 가능 국가’로의 개헌을 지지하는 우익 성향 지지층을 결집해 정치적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의중이 깔려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평화헌법 개헌은 아베 총리와 그의 핵심 지지층의 숙원이다. 아베가 사활을 걸고 있는 평화헌법 개헌의 핵심은 헌법 9조 개정이다. 일본의 2차 세계대전 패전으로 만들어진 헌법 9조는 일본의 교전권과 전력 보유를 금지한다.
전후 체제 극복을 내걸고 있는 아베 총리와 자민당은 헌법 9조에 자위대의 존재를 명기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개헌안 통과를 추진 중이다. 이들은 이 같은 내용의 개헌을 우선 성사시킨 뒤 궁극적으로는 헌법 9조 기존 조항 전체를 고쳐 일본을 전쟁 가능 국가로 만들겠다는 2단계 개헌 플랜을 가지고 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