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5월과 6월에 미국에서 발생한, 경찰에 의한 흑인 사망 사건은 내게 영화 <그린북>(2018)을 상기시켰다. <그린북>은 1962년을 배경으로 미국 내 흑인차별의 문제를 잘 보여준 작품이자 따뜻한 감동을 주는 영화다. 또한, 과거의 인종차별 문제를 재조명함으로써 현재도 계속되는 흑인차별의 문제에 울림을 주는 영화다. 그린북(Green Book)은 1933년부터 1966년까지 출판된 흑인을 위한 여행 안내 책자를 뜻한다(위키피디아 참조).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인종차별 폐지를 위한 시위가 일어나는 요즘, 다시 보기 좋은 영화이다.
피터 패럴리 감독이 연출한 <그린북>은 새로운 시선으로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의 문제를 다룬다. <그린북>은 실존 인물인 흑인 천재 피아니스트 돈 셜리(Donald Shirley)와 그의 운전사이자 경호원인 이탈리아 이주민 토니 발레롱가(Tony Lip) 간의 이야기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 당시 상상하기 힘든 흑인 피아니스트와 백인 운전사라는 관계, 서로에 대한 불신이 신뢰와 우정으로 변화하는 과정, 아름다운 경치와 배경 및 토니 발레롱가의 가족 사랑을 보여줌으로써 관객의 몰입과 마음을 움직인다. 같은 주제를 다룬 기존 영화들과 달리 이 영화는 내용이 무겁지 않고 관객을 그리 불편하게 만들지 않는다. 돈 셜리는 마허샬라 알리가, 토니 발레롱가는 비고 모텐슨이 연기했다.
영화의 주요 줄거리는 돈 셜리의 미국 남부지역으로의 두 달간 연주 여행이지만, 그의 피아노 공연 내용은 과하지 않았다. 자칫 공연 내용에 치중했더라면, 초점이 흐려지거나, 관객의 집중력을 흐릴 수도 있었다. 대신에,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심해지는 흑인에 대한 무시와 편견을 공연 준비 시간이나 공연 밖의 일화를 통해서 잘 보여주었다. 예를 들면, 남부 어떤 지역에서 공연 도중 쉬는 시간에 그가 화장실을 가려고 하자 흑인 전용의 건물 밖 화장실을 사용하라고 한다. 그러자 돈 셜리는 숙소까지 가서 볼일을 보고 와서 연주를 계속한다. 영화의 절정은 마지막 공연장에서 벌어진다. 돈 셜리의 공연은 허가했지만, 그의 대기실은 창고였고, 저녁조차도 공연장 내부에서 할 수 없었다. 그러자, 돈 셜리와 토니는 의기투합하여 공연계약자와의 약속을 파기한 채 공연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간다.
아쉬운 점은 돈 셜리의 유가족이 영화 내용의 진실성에 대해 항의를 했다는 점이다. SBS 연예뉴스에 따르면, 영화 속 남부지방 연주 투어 기간이 실제보다 짧았고, 돈 셜리의 게이 여부 및 그린북 영화화에 대한 돈 셜리의 허락 여부 등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한다(김지혜 기자, 2019. 1. 18).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린북>을 보면서 인종차별의 심각성을 깨닫고, 작금의 미국 시위 상황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다. 두 흑인(조지 플로이드와 레이샤드 브룩스) 사망 사건을 계기로 인종차별 철폐를 위한 초석이 놓이길 기대한다(김주희 영화칼럼니스트).
인천=정창교 기자 jcgyo@kmib.co.kr
[김주희 영화칼럼] 다시 소환된 <그린북>
입력 2020-06-21 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