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동네 강아지와 멋진 사진작가의 달달한 우정 [개st하우스]

입력 2020-06-20 11:10 수정 2020-06-20 11:13
이번 사연의 주인공은 서울 정릉동 달동네의 믹스견 몽이(13). 바디프로필 사진작가 마지승씨가 3년째 돌보고 있다고. 무너져가는 달동네에 꽃핀 둘의 우정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개st하우스]는 인간과 동물의 행복한 공존을 담는 공간입니다. 즐겁고 감동적인 동물 이야기가 고플 때마다 찾아오세요.

서울 정릉 달동네의 어느 허름한 집에는 미소가 참 예쁜 회색 개가 있습니다. 다 무너져가는 판잣집에서 쪼르르 나와서는 사람 앞에 얌전히 앉아 귀여운 혓바닥을 내밀어주네요. 이 댕댕이는 13살 믹스견 몽이입니다.

미소가 예쁜 몽이. 제보자 제공

그런데...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몽이는 앞을 볼 수 없었죠. 심한 눈병으로 눈을 뜨지도 못했습니다. 몽이네 할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을 앓아 간단한 의사소통조차 어려운 상황.

그런 몽이에게 기적 같은 인연이 찾아옵니다. 달동네의 쓸쓸한 풍경을 사진에 담으러 온 사진작가 형입니다. 우연히 가엾은 몽이를 만나 밥 주고 돌봐주기를 하루...이틀..벌써 3년째라고 해요.

무너진 달동네에 피어난 둘의 따뜻한 우정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몽이가 제보자를 마중나왔다. 둘의 눈빛이 애틋하다.

피사체를 향한 따뜻함, 렌즈를 넘어 손길로

“간식만 주고 가는 그런 애였어요, 몽이도.
겨울이 오면 옷을 입혀주고 겨울이 가면 다시 벗겨주는 딱 그 정도 사이였죠.”

마지승 작가는 손수 지은 옷을 몽이에게 입혀주었다. 인스타그램 @siwolstudio

1960, 70년대 도심 개발에 쫓겨난 사람들의 마을인 정릉골은 몇년 안에 철거될 가능성이 큽니다. 살던 주민들은 떠나면서 키우던 동물을 하나둘 버리고 갔죠.

우리나라처럼 한 구역을 초토화하는 재개발 방식은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힘들다.

무너진 달동네 담장 너머로 서울 도심이 아른거린다. 사진 속 고양이는 이후 보이지 않는다. 제보자 제공

제보자가 정릉골을 찾아온 것은 3년 전입니다. 그는 달동네의 낡고 쓸쓸한 풍경을 촬영하고 싶어 이곳에 왔고, 촬영하다 만난 동물들에게 밥을 주고 약을 발라줬습니다.

지난해 가을, 정릉골 고양이들. 사진 속 동물 대부분은 지금은 이 세상에 없다. 인스타그램 @siwolstudio

이상하게도 달동네 동물들은 너무 쉽게 죽었습니다. 되게 작은 상처가 덧났을 뿐인데 어제 인사한 애들이 오늘은 허무하게 죽어있었죠. 그래도 제보자는 동물들을 묵묵히 챙겼습니다.

제보자에게 밥을 얻어먹는 동네 고양이. 이름이 딱히 없지만 말 걸듯 야옹거리면서 다가와서 '말하는 고양이'라고 부른다고. 중성화수술을 마쳤다는 표시로 왼쪽 귀 끝이 5mm정도 잘려 있다. 제보자 제공

“제가 오늘 방금 준 사료는 저 아이가 살아생전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받은 식사대접일 수 있어요. 그렇다면 저는 주고 싶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제보자는 몽이를 눈여겨보지는 않았어요. 엄연히 보호자가 있는 반려견이다보니 담 너머로 간식만 전해주고 떠났죠. 그러다 유난히 더웠던 지난해 여름, 제보자는 몽이를 자세히 들여다보게 됩니다.

당시 몽이의 멀어버린 두 눈. 눈동자가 보여야 할 자리에 피, 고름, 뭉친 털이 가득했다고. 제보자 제공

이게 무슨 일이람. 몽이의 두 눈이 멀어있었습니다. 오직 발소리와 냄새만으로 제보자를 알아챈 몽이는 더듬더듬 다가왔죠. 몽이의 두 눈은 피고름으로 덮여 있었어요. 제보자는 몽이의 두 눈알이 빠졌다고 생각했습니다. 달동네에는 그렇게 눈알 없는 동물이 무척 많았거든요.

가슴이 무너져내리는 듯했습니다. 돌볼 사람도 없는 몽이가 이렇게 아플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겠냐는 생각까지 했다네요. 그렇지만 제보자는 금세 마음을 다잡고 몽이를 제대로 돌보기로 합니다.

“내가 조금만 수고로우면 이 아이를 돌볼 수 있지 않을까?”

제보자는 집주인 허락을 받고 매일 몽이를 만났어요. 눈에 안약을 바르고 미용 가위로 뒤엉킨 눈가의 털과 고름을 하나하나 직접 벗겨냈죠. 병원에 데려가고 싶지만 위생상태가 워낙 나빠서 수차례 거절당했거든요.

몽이 눈의 고름을 닦고 안약을 넣어주는 제보자. 사료에도 항생제를 섞어 먹여주고 있다. 아무리 바빠도 일주일에 한 두번은 달동네를 찾아오는 중.

몹시 아플 텐데도 몽이는 치료를 꿋꿋하게 버텼습니다. 그런 몽이가 기특했던 제보자는 생업인 사진 촬영도 접어두고 8, 9월 내내 아침점심 그리고 저녁으로 달동네로 향했습니다. 여름 햇살에 피부가 타들어가 심한 화상을 입었지만 그래도 좋았다고 하네요.

미용을 마친 몽이가 신기한 듯 털뭉치를 바라보고 있다. 제보자 제공

그렇게 가을이 찾아왔고
10월의 어느 날, 몽이는 눈을 떴습니다.

“참 잘했다고 생각했어요. 두세 달만 수고로웠는데 건강하게 눈을 떠줘서요.”
몽이의 아마도 생애 첫 목욕. 다른 멍뭉이었으면 난리가 났을텐데 얌전한 모습

사랑스럽고 서툰 가위질

오늘도 제보자는 삐뚤빼뚤 몽이 털을 잘라줍니다. 뭐가 그리 좋은지 몽이는 혓바닥을 내밀고 활짝 웃고 있고요. 제보자도 머쓱한지 “어차피 위생관리 문제니까 예쁠 필요는 없지 않나요”고 괜히 묻네요.
제보자는 직접 가위와 약을 들고 몽이의 눈을 치료하고 있다. 매주 두 세차례 달동네를 찾아와서 사진을 찍고 동물들을 돌본 게 어느덧 3년째라고.

우리나라의 재개발은 살던 사람들을 거칠게 밀어냅니다. 재개발은 닥쳐오고 사람들은 어차피 쫓겨날 거 손해라도 안 보려고 노력하고요.

남겨지거나 버려진 개, 고양이를 구호하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갑니다. 재건축 지역의 동물 이주사업을 서울시와 시범 운영하는 동물보호단체 카라의 전진경 이사에 따르면 동네 고양이의 이주 활동은 ▲먼저 중성화 시술을 통해 개체수를 제한하고 ▲기존 지역고양이 숫자와 환경 등을 고려해 적합한 이주 후보지를 선정해 조금씩 밥터를 옮기는 세밀하고도 꾸준한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문득 제보자는 지난해 겨울에 태어났던 어린 고양이들을 떠올리네요.
지난해 1월 태어난 아기 고양이들. 제보자가 "앞으로 잘 지내보자"며 반가워했던 이들은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모두 죽었다. 인스타그램 @siwolstudio

“겨울 시작할 때 태어났는데 봄을 보지 못하고 죽었어요. 죄도 없는데 추위와 배고픔 속에 죽었고요. 따뜻함도 돌봄도 못 느꼈어요.”
“버려진 생명들을 보면서 신은 없을 수도 있겠다, 절망했어요.”

고양이들은 죽기 전에 조용한 곳을 찾아간다고 하죠. 인근 폐가의 빈 방에서 제보자는 죽은 아기 고양이들과 만납니다. 더럽다, 병 걸린다며 피하는 친구도 이해할 수 있었고, 달동네의 가엾은 죽음 앞에서 그런 감정을 떠올리는 스스로가 죄스러웠다고 하네요.

정릉골은 지금 재개발 준비가 한창입니다. 조만간 조합원 동의를 받고 구청의 사업인가 도장을 찍으면 정릉골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겠죠. 몽이네 할아버지와 몽이의 운명은 어찌 될까요. 제보자는 남은 동물들을 걱정합니다.

“사람들은 그래도 보상이라도 받고 쫓겨나죠.
문제는 동물이에요. 동물들은 누가 신경써주지 않잖아요.”

몽이가 집으로 향하는 제보자를 배웅하고 있다. 제보자가 "수고했어. 이제 돌아가렴"이라고 말하면 뒤돌아선다고.





이성훈 기자 tell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