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릴이 하루 종일 쇼메이커에게 라면 요구한 사연

입력 2020-06-19 20:49 수정 2020-06-19 20:56

담원 게이밍의 서머 시즌 첫 경기가 펼쳐졌던 19일 오후 4시경, 담원 선수단이 손을 풀러 일찍 LCK 아레나에 나왔다. ‘베릴’ 조건희는 쉬지 않고 ‘쇼메이커’ 허수를 불렀다. 그는 하염없이 “허수야, 라면 끓여줘”란 말만 반복했다. 급기야 허수를 “라면메이커”라고 부르면서까지 라면을 찾았다. 한 자리 건너 앉은 허수는 다만 머쓱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경기 후 ‘캐니언’ 김건부에게 물어보니 이유인즉슨 이렇다. 담원 선수단은 18일 밤늦은 시간까지 연습에 매진했다. 도중 출출함을 느낀 허수가 선수단에 “야식으로 라면 먹을 사람 있어?”하고 물었다. 조건희가 손을 들었고, 설렌 마음으로 부엌에 나갔다. 그런데 찬장을 열어본 허수가 갑자기 돌변, “라면이 1개밖에 안 남았다”면서 자기 냄비에만 물을 올렸다.

이에 날이 바뀔 때까지 분이 풀리지 않은 조건희가 경기 시작 직전까지 허수를 쫓아다니며 “어서 내 라면을 끓여 달라”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조건희의 라면 요구는 경기 시작 직전 선수들의 마이크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를 점검하는 ‘마이크 테스트’ 시간까지 계속됐다.

이날 담원은 샌드박스 게이밍을 세트스코어 2대 0으로 꺾었다. 불화설(?)의 주인공인 조건희와 허수가 가장 발군의 활약을 펼쳤다. 조건희는 마오카이와 판테온이란 이색 픽으로 ‘플레이어 오브 게임(POG)’을 독식했다. 허수는 조이와 카사딘으로 캐리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했다.

프로게이머에겐 남이 끓여준 라면보다 승리가 더 먹음직스러운 법이다. 서포터는 라면을 양보하지 않은 미드라이너를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2세트엔 5레벨로 미드 로밍을 가 허수에게 세 번째 어시스트를, 동시에 ‘도브’ 김재연(아지르)에게 세 번째 데스를 안겼다. 15분경 대규모 교전 상황에서는 “(킬) 안 주면 던진다”는 허수의 협박 아닌 협박에 킬도 양보했다.

이 사연을 전해준 김건부는 담원 선수들이 시종일관 밝은 분위기 속에서 시즌 첫 경기를 치렀다고도 귀띔했다. 그는 “스프링 시즌엔 ‘승리’에만 집착한 게 오히려 안 좋은 결과를 낳았던 것 같다”면서 “올 시즌엔 승리에 초점을 맞추되, 부담감을 내려놓고 즐겁게 게임하겠다”고 말했다.

윤민섭 기자 fla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