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지난 한기 내내 온라인 수업이 이어지면서 대학생들 사이에서 등록금 반환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폭발하고 있다. 여기에 “환불은 불가능하다”며 대화를 거부하는 대학 측의 무성의한 태도가 겹치면서 일부 학생들이 혈서로 환불 요구를 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한양대 커뮤니티에는 지난 17일 ‘등록금 반환 대신 혈서가 필요하다고?’라는 제목의 글과 사진이 올라왔다. 이 게시물에는 ‘등록금 반환’ ‘대면 시험 반대’라는 글귀가 적힌 혈서 사진이 함께 올라왔다. 이후 연세대 등에서도 혈서 인증은 줄을 잇고 있다.
혈서를 작성한 사학과 3학년 A씨는 자신이 이런 행동을 한 이유가 한양대 기획처장의 발언 때문이라고 밝혔다. 앞서 한양대 총학생회에 따르면 이달 초 ‘비대면 시험’을 요구하는 간이 농성장을 방문한 기획처장이 ‘비대면 시험을 원한다면 학생들에게 혈서를 받아오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기획처장은 이런 말을 한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최근 대학가 혈서 사태를 촉발한 A씨에게 혈서 사태와 등록금 환불 요구에 대해 물었다.
-우선 이번 일이 일어나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설명해달라
“학교 측이 학생들의 주장을 묵살했다. 비대면 수업과 등록금 반환 문제에 대해 학생들이 여러 차례에 걸쳐 요구를 했다. 하지만 기획처장을 겸직하고 있는 교수가 내놓은 답변은 충격적이었다. ‘비대면 시험 할거면 학생들한테 혈서를 받아와라. 공정하게 혈서라도 받아와야 하는거 아니냐’라고 말했다. 교육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혈서’라는 단어를 가볍게 꺼내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그래서 직접 하게 됐다.”
-등록금 반환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학교 측과 특별한 문제가 불거졌는지
“우선 학교의 태도가 잘못됐다. ‘혈서를 써와라’라는 말을 했다는 건 이미 학생들을 불신하는 태도를 보인 거다. 신뢰가 없는 거다. 현재 내가 재학중인 사학과가 속한 인문대학의 경우 등록금은 300만원 후반대이고 공과대학은 460만원 정도이다. 등록금 반환은 대면과 비대면 수업, 시험에 실제 들어가는 실비 책정이 되고 나서야 실질적인 대화가 가능하다고 본다. 정확한 운영 비용을 알아야 등록금 반환 문제도 해결될 텐데, 학교측은 이를 공개하고 있지 않다. 무작정 ‘비대면 수업을 진행했다고 학교 측 비용이 절감된 부분은 거의 없다’는 말만 하고 있다. 우선 학교가 대면과 비대면 수업에 쓰이는 비용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혈서를 쓰고 난 후 학교는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
“아직까지 어떠한 입장도 내놓고 있지 않은 상태다. 총장은 총학생회의 서면 질의와 공개 질의에만 답변하고 있다. 그것도 실속없는 얘기만 내놓고 있다. 요컨대 ‘우리 학교는 코로나19와 관련 정부의 방역지침에 따라 방역대책을 마련할 것이고, 대면 시험을 시행하고자 한다’고 하는 식이다. 사실 학생회나 단체에 속한 신분이 아니어서 학교 측의 답변을 쉽게 들을 수는 없다. 직접 학교 당국을 찾아가 TF팀, 선택적 패스제 등을 논의해야 하지만 지지부진한 상태다. 또 총장은 지난 4일 학생 대표자의 면담 요청에 ‘이번 주는 시간을 내기 어려우니 다음에 오라’고 한 이후 침묵하고 있다.”
*선택적 패스제란 A~D학점을 받은 과목 성적을 S(Successful)·P(Pass)로 바꿀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
-교육부가 등록금 반환은 대학과 학생의 문제라고 했는데
“정부가 나서서 대학에 의견을 줘야 한다. 등록금 문제에 반환 지침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의 현실적인 우려는 정부의 도움 없이는 대학에 전해지지 않는다.”
-학교의 태도에 분노한 학생들이 혈서를 잇따라 쓰고 있다
“사실 썩 좋지 못한 방향으로 번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에 등록금을 내고 입학한 학생들이 이 문제에 관여하지 못하는 건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학생은 대학에 있어서 혈관을 도는 혈액과 같다. 혈서를 써야만 하는 절박하고 급박한 상황에 처한 이 상황이 안타깝다.”
한명오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