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르르 떴다 ‘팍’ 식는 코로나치료제 희망고문, 승자는

입력 2020-06-21 06:00
신화 연합

세계를 강타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자 치료제에 시선이 몰리고 있다. 에이즈 치료제부터 시작해 구충제, 말라리아 치료제, 에볼라약 등이 코로나바이러스 무력화의 ‘희망’이라며 등장했지만 뒤이어 제기된 부작용 논란에 잠잠해졌다.

최근 여론을 달구는 건 스테로이드제 ‘덱사메타손’이다. 코로나19 중증환자의 치사율을 낮추는 데 효과적이라는 평가가 나온 탓이다.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진이 임상실험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얻어냈고, 세계보건기구(WHO)의 호평까지 더해졌다. 하지만 국내 전문가들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은 지난 17일 브리핑에서 “덱사메타손은 보조적 치료제일 뿐”이라며 선을 그었다. ‘코로나 통치약’을 고대했던 사람들은 또 다시 갸웃거린다.

덱사메타손, 진짜 희망 아닐까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진은 지난 16일(현지시간) 덱사메타손의 코로나19 치료 효과에 관한 연구 성과를 공개했다. 결론은 긍정적. 산소호흡기 치료 환자의 사망률을 3분의 1로, 기타 산소치료 환자 사망률을 5분의 1로 줄였다. 영국 정부는 이 약을 코로나19 치료제로 긴급승인했다. WHO는 “매우 획기적이고 훌륭한 소식”이라고 박수쳤다.

덱사메타손은 1957년 개발된 코르티코스테로이드 약물의 하나다. 주로 관절염이나 심한 알레르기, 천식, 일부 암 치료에 사용됐다. WHO 필수약물 목록에도 올라있는 안전한 약이다. 이미 특허가 풀려 많은 제약사가 복제약을 만들어 팔고 있고 가격도 매우 저렴하다. 한국에서는 부광약품, 유한양행 등이 생산하는데 0.75㎎ 한 알의 가격은 17~33원 정도다.

그럼에도 코로나19 치료제로서 완벽한 호응을 받을 수 없는 이유는 장기간 사용 시 발생하는 문제들 때문이다. 단기간에 국소적으로 사용했을 때 효과를 보이지만, 사용 시간이 길어지면 면역계 억제 등 부작용을 노출할 수 있다.

정 본부장이 우려하는 지점도 여기에 있다. 정 본부장은 “의학전문가 의견은 ‘염증 반응을 줄여줄 수 있지만 면역을 떨어뜨려 다른 부작용이 올 수 있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라며 “중증 염증에 대한 치료를 목적으로 임상에서 쓰고 있는 약품이기 때문에 새롭게 적응증을 바꾸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코로나19를 근본적으로 치료하는 게 아닌, 염증 반응을 완화해 주는 목적의 약물이라는 설명이다.

로이터 연합

트럼프 효과로 떠오른 클로로퀸의 추락
코로나19 사태를 가장 안일하게 보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나는 말라리아 치료제를 복용하고 있어 괜찮다”며 꺼내 든 것은 ‘클로로퀸’이었다. ‘신의 선물’이라는 찬사까지 덧붙였고, 코로나19 치료제로 승인한 이후 ‘게임체인저’라는 표현을 썼다.

‘직접 먹어봤는데 좋더라’는 지극히 개인적 주장인데도 트럼프 대통령의 입을 탄 덕분에 클로로퀸 유명세는 치솟았다. 유사약품인 ‘하이드록시클로로퀸’과 함께 코로나19 사태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이내 해당 약품의 효과가 불분명하고, 오히려 사망 위험을 증가시킨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등장했다.

AP연합

그러자 미국 식품의약처(FDA)는 지난 15일 클로로퀸과 하이드록시클로로퀸에 대한 코로나19 긴급사용 승인을 취소했다. 부정맥 등 심장박동 문제와 저혈압, 근육·신경계 훼손의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어 환자들에게 더 큰 위험을 안겨줄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영국 의학저널 ‘랜싯’이 공개한 연구내용에 따르면 671개 병원 9만6000여명의 코로나19 입원 환자들을 상대로 한 임상실험 결과, 클로로퀸 복용자의 사망 위험도는 34%나 증가했다.

한국에서도 클로로퀸의 코로나19 치료 효과에 대해 ‘부적합 판정’을 내렸다. 임상시험조차 하지 않았다. 서울아산병원과 강남세브란스병원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임상 승인을 받아 진행해왔지만, 환자 모집과 선정이 어렵고 부작용 우려가 나와서였다.

구충제는 만병통치약? 이버멕틴의 진실
광범위 구충제인 ‘이버멕틴’이 코로나19 확산 억제에 도움을 준다는 연구결과는 호주에서 제기됐다. 모니쉬대학교 생의학발견연구소가 진행한 세포배양 실험에서 이버멕틴이 코로나19를 유발하는 바이러스인 ‘SARS-CoV-2’의 성장을 방해하는 걸로 확인됐다. 단일 용량만으로 48시간 이내에 바이러스의 유전물질을 소멸시켰고, 24시간 이내에 상당한 감소효과를 보였다.

그런데 한국에서 이 연구결과가 유난히 큰 화제를 모은 건 이버멕틴이 반려동물의 사상충 치료제로 쓰인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나서다. 폐암 말기로 투병 중인 개그맨 겸 가수 김철민씨가 개 구충제 ‘펜벤다졸’을 복용한 뒤 병세가 호전됐다는 뉴스가 한참 주목받았고, 일부 네티즌들 사이에서 “구충제가 만병통치약”이라는 댓글이 쇄도했다.

연합뉴스

이버멕틴 역시 같은 환호를 받았다. 이버멕틴은 세계 각국에서 광범위하게 쓰는 구충제다. 부작용과 독성이 적어 ‘기적의 약물’로 불리기도 한다. 한국에선 구충제의 역할보다 모낭충을 제거하는 데 쓰이고 있다. 염증성 주사치료에 사용되며 피부에 바르는 외용제도 허가를 받았다. 최근 의료계에서는 이버멕틴의 항암효과에도 주목한다. 한국 국립암센터에서는 뇌암, 췌장암, 폐암 세포주에서 동일 효능을 가진 항암 후보물질로 이버멕틴을 연구 중이다.

그러나 이버멕틴도 코로나19 치료제로 부적합다는 회의적 시선이 나온다. 이버멕틴이 바이러스를 죽이는 데 어떤 작용 과정을 거치는지 알려지지 않았고, 사람에게 사용했을 때의 적합성 여부 역시 밝혀진 바 없다. 코로나19를 치료하는 데 유용하다는 결론을 내리려면 환자에게 직접 투여하는 임상을 통해 사멸 효과를 따져야 한다. 정 본부장도 “이버멕틴을 환자나 사람에게 투여해 효과를 검증한 게 아니다. 세포 수준에서 검증하고 효과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제시한 것이기 때문에 바로 환자 치료에 적용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EPA연합

일본이 개발한 아비간, 아베로 떴다가 아베로 졌다

일본 내 코로나19 확진자가 쏟아지던 지난 2월 말 아베 신조 총리는 대책본부회의를 주재하면서 항인플루엔자약 ‘아비간’을 언급했다. 이어 자국에서 개발한 이 약물이 코로나19 치료약으로 주목된다는 주장을 펼쳤다. 당시 일본은 요코하마항에 정박한 크루즈선에서 연일 대규모 확진자가 나오고 있었다. 도쿄올림픽 개최마저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치료약 개발이 절실한 때에 아베 총리는 “5월 중 아비간 승인을 목표로 한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아비간이 코로나19 치료에 명확한 효과를 보인다는 근거가 없는 데다, 기형아를 낳을 수 있다는 전문가들 파단이 잇따라 제기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여기에 아베 총리가 한 기자회견에서 “아비간이 ‘탈리도마이드’와 같은 부작용을 갖고 있다”고 말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기대는 분노로 돌변했다. 탈리도마이드는 1950~60년대 기형아 출산 부작용을 일으키면서 판매 금지된 약물이다. 아베 총리는 아비간의 치명적 부작용을 알고도 묵인한 셈이다.

그런데도 아베 총리의 ‘아비간 밀어주기’는 계속됐고 코로나19 치료제를 구실로 한 정치적 행동이라는 비판까지 나왔다. 일각에서는 아비간을 개발한 도야마화학의 자회사 후지필름 회장이 아베 총리와 가까운 사이라는 의혹도 제기했다. 아비간의 미국 FDA 사용 승인을 받기 위해 일본 정부가 트럼프 행정부에 로비했다는 소문도 등장했다. 그 사이 아비간은 임상시험에서 특별한 성과를 내지 못했고, 5월 내 승인 역시 무산됐다. 일본 국민이 품었던 치료제 개발의 희망은 아베 총리를 둘러싼 온갖 의혹에 얼룩진 채 끝나버렸다.

연합뉴스

코로나19 치료제 가운데 그나마 가장 앞서고 있는 건 미국 제약회사 길리어드사이언스가 개발한 에볼라 치료제 ‘렘데시비르’다. 바이러스의 유전체 복제기능을 파괴하는 항바이러스제로 평가받고 있다. 현재 임상 3단계를 거치고 있다. 간 기능 이상, 구토, 호흡부전 등 부작용 논란이 나왔지만 미국 FDA의 긴급사용승인을 받았다. 한국 식약처도 지난 3일 국가필수의약품 안전공급협의회 심의를 거쳐 렘데시비르의 특례수입을 결정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이 전 세계 10개국, 73개 의료기관에서 코로나19 환자를 대상으로 시행한 임상시험에서 렘데시비르는 환자 회복기간을 15일에서 11일로 약 31% 단축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지연 기자 jy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