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덱사메타손, WHO 호들갑” 전문가들이 정은경 손 들어준 이유

입력 2020-06-20 00:05
지난 17일(현지시간) 영국 맨체스터의 한 약국에서 직원이 덱사메타손을 들어보이고 있다. 신화통신 연합뉴스

개발된 지 60년이 넘은 저가의 스테로이드제제인 ‘덱사메타손’이 하루아침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중증환자들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지난 16일(현지시간) 영국 정부는 덱사메타손을 ‘코로나19 치료제’로 긴급승인하며 처방을 즉시 허용했다. 앞서 옥스퍼드대 연구진이 코로나19 환자 20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서 산소호흡기가 필요한 중증환자에게 덱사메타손을 투여했을 때 치사율이 40%에서 28%로 개선됐다고 발표한 연구결과가 바탕이 됐다.

덱사메타손은 1957년 개발된 스테로이드제의 하나로 항염증 효과가 있는 약물이다. 주로 관절염이나 알레르기, 천식, 일부 암 치료에 사용됐는데 최대 열흘을 투여해도 비용이 하루 5파운드(약 7600원)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WHO 필수 약물 목록에 등재되어 있기도 하다.


당장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매우 훌륭한 소식”이라며 “영국 정부에 축하를 보낸다. 옥스퍼드대와 병원, 시험에 참여한 여러 환자에게도 감사하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한국 보건당국의 반응은 달랐다.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 본부장은 지난 17일 정례 브리핑에서 덱사메타손을 두고 염증 반응을 완화해주는 ‘보조적 치료제’라고 선을 그었다. 오히려 “의학 전문가들은 덱사메타손이 면역을 떨어뜨려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의견을 주고 있다”며 경계했다.

덱사메타손을 둘러싼 국내외 전문가 반응에 온도 차가 생기는 상황에서 국민일보는 19일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이하 엄),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이하 천)와 전화인터뷰를 갖고 덱사메타손의 가능성과 한계에 대해 물었다.

엄중식(왼쪽)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와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 가천대 길병원·이대목동병원 홈페이지 캡처

-덱사메타손이 코로나19 중증환자에게 큰 효과가 있다는 실험결과가 발표됐는데 어떻게 평가하나

엄 “저는 이미 코로나19 중증환자에 스테로이드제를 쓰고 있었다. 덱사메타손은 아니지만 같은 스테로이드 계열의 약이다. 너무나 증상이 위중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썼다. 실제 그 효과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어쨌든 할 수 있는 한에서는 최선을 다했다. 사실 옥스퍼드대 연구 논문을 원문으로 읽어봐야 알겠지만, 덱사메타손을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약으로 생각하면 곤란하다. 중증환자에게 사용하는 게 의미 있다는 얘기이고, 경증·중등증 환자에게는 큰 도움이 안 될 것이다.”(*코로나19 확진자는 맥박과 수축기 혈압, 호흡수, 체온, 의식 수준 등 5가지를 기준으로 경증, 중등증, 중증, 최중증으로 분류된다)

천 “사실 새로울 게 별로 없다. 우리나라도 코로나19 중증환자들에게 스테로이드제를 많이 썼을 것이다. 임상경험으로 이 약을 쓰면 좋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다만 의사들도 (코로나19에 대한 치료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 긴가민가했을 것이다. 그러던 차에 옥스퍼드대에서 연구결과를 발표했기 때문에, 굉장히 신뢰성 있는 대학이기도 해서 인정받는 게 아닐까. 논문에는 산소호흡기에 의지하는 환자의 사망위험은 28∼40%, 기타 산소치료를 받는 환자의 사망위험은 20∼25% 줄어든 것으로 나와 있다. 산소를 쓴다는 것은 대부분 호흡기가 나쁜 환자라는 얘기인데 이분들에게 생명 보존 효과가 있다는 뜻이다.”


-덱사메타손의 의학적 효과와 치료 메커니즘은

천 “덱사메타손은 스테로이드제제다. 스테로이드는 항염증 작용이 가장 크다. 사람의 몸은 염증이 생기면 사이토카인이라는 체내 면역 물질이 나온다. 하지만 면역작용이 과다하게 이뤄지면 정상 세포까지 공격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게 젊은 코로나19 환자에게 사망까지 초래한다는 사이토카인 폭풍이다. 스테로이드는 이러한 사이토카인 물질을 억제하는 제제다. 기본적으로 천식이 있거나 만성 폐쇄성 폐 질환 등이 있는 환자들에게는 스테로이드제를 쓰면 드라마틱하게 상태가 좋아진다. 짧게 쓰면 큰 도움이 되는 게 사실이다.”

덱사메타손 제제. AFP 연합뉴스

-이번 연구결과를 두고 WHO나 영국은 덱사메타손을 두고 굉장히 들뜬 모습인 반면 우리 보건당국은 부작용을 우려하며 차분한 평가를 내려 미묘한 온도 차가 느껴진다

엄 “(WHO와 영국을 보면) 너무 과한 반응이다. 왜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지 궁금하다. 답답한 마음은 잘 알지만. 전 세계가 굉장히 심각한 상황을 경험했고, WHO가 코로나19와 관련해 뭐 하나 칭찬받을 일이 없었기에 더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진료하는 의료진이 굉장히 신중하게 덱사메타손을 쓸지 말지를 잘 결정하고, 사용한 뒤에는 여러 합병증과 후유증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모니터링도 잘 해야 한다. 영국이나 WHO에서 과대평가하는 건지 과장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바람직하지는 않은 것 같다. 코로나19의 근본적인 1차 치료제도 아니고 말 그대로 보조제, 완화제의 개념 아닌가.”

천 “스테로이드는 부작용이 많은 약물이기 때문에 마음대로 쓰면 안 된다는 뜻으로 읽힌다. 의사라면 누구나 스테로이드가 항염증에 좋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부작용 때문에 절대적인 기준에 따라 철저하고 조심히 써야 한다는 얘기이기도 할 것이다. 또 일반 시민들은 덱사메타손을 코로나19 치료제로 착각할 수 있기에 경계심을 주려고 한 발언으로 보고 있다. 또 덱사메타손은 치료제가 아니라 완화용 보조제다. 단독으로 치료를 해주는 게 아니라 염증이 없어지도록 도와주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박테리아 폐렴이 있을 경우 항생제가 치료약이고, 스테로이드는 치료를 돕는 보조 역할인 것이다. WHO가 극찬했다는 것은 가격이 싸고, 쉽게 구할 수 있고, 검증된 약이기 때문에 ‘아, 코로나19 치료를 도울 약물이 나타났구나’라고 평가한 것이다.”

덱사메타손 주사용 앰플. 로이터 연합뉴스

-그렇다면 오남용했을 때 이 약의 부작용은 어느 정도인가

엄 “(투여하는 약의) 누적 용량이 커지면 세포 면적이 떨어지기 때문에 여러 가지 바이러스나 세균에 의해 감염이 생길 수 있다. 특히 스테로이드를 많이 쓰면 뼈에 문제가 생기는 예도 있다. 고관절 같은 곳에 괴사가 생길 수도 있다.”

천 “스테로이드는 부작용이 매우 많아서 장기복용하면 절대 안 된다. 고혈압, 당뇨, 녹내장 등 한두 개가 아니다. 그래서 꼭 전문의가 처방하는 약이고, 저도 5∼7일 이상은 절대 처방하지 않는다. 조심스럽게 쓰면 굉장히 좋은 항염증 약물이다.”

-코로나19 치료제와 관련된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세계가 지나치게 들썩거리는 듯 보이는데

엄 “발표하는 분들이 학문적 입장에서 객관적인 사실을 논했으면 좋겠지만, 침소봉대하는 경향이 짙다. 일정한 결과가 나온 것을 합리적으로 분석하고,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써먹을지 고민하는 게 아니라 터뜨리듯 보도가 되고, 거기에 따라 주식시장까지 왔다 갔다 한다. 이건 정말 좋지 않다고 본다. 의도적인 게 아니냐는 오해를 할 정도다.”

박장군 기자 genera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