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찰 아닌 인권조사’ 윤석열의 선택, 여권-검찰 또 충돌

입력 2020-06-18 18:12

2010년 검찰의 한명숙 전 국무총리 수사 과정을 겨냥한 진정사건의 처리 경과를 둘러싸고 범여권과 검찰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핵심 쟁점은 윤석열 검찰총장이 이 진정 내용을 감찰 사안으로 보지 않고 인권감독관의 진상조사 대상으로 판단한 것이 부적절했는지 여부다. 여권은 ‘제식구 감싸기’ 식의 미온적 대처로 보지만 검찰은 절차에 따른 조치였다는 입장이다.

10년 전 한 전 총리 사건 수사 과정이 감찰 대상이냐는 문제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검사 징계시효가 지났다” “처리부서 배당은 윤 총장의 권한”이라고 답변하는 이들이 많다. 거대 여당이 검찰 흔들기에 나섰다는 관측, 윤 총장의 조직 장악력에 흠집이 났다는 관측이 이어진다. 윤 총장의 선택은 추후 결과로 평가될 전망이다. 다수의 법조계 관계자는 “감찰 대신 진상조사를 택한 윤 총장이 결과에 책임을 지면 된다”고 했다.

18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대검 감찰 업무를 담당했던 복수의 관계자는 한 전 총리 사건 수사팀에 대해 제기된 진정이 감찰의 목적인 징계시효를 지난 사안이라고 공통적으로 지적했다. 전직 검찰 간부인 A변호사는 “징계시효가 지난 사건을 감찰한다는 것은 공소시효가 지난 사건을 수사한다는 것과 같다”고 했다. 검찰 고위직 출신 B변호사도 “최장 5년인 징계시효가 완성된 지 오래됐다”고 말했다. 검사 징계시효는 3년이지만 금품·향응수수, 공금횡령 등이 있는 경우에는 5년으로 늘어난다.

시효가 지났다 하더라도 ‘과거사 수사’처럼 감찰본부가 사안을 다시 살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예외적으로 진상규명이나 제도 개선의 필요성이 있다면 감찰이 불가능하진 않다는 것이다. 단 이 경우에도 조사 주체는 검찰총장이 판단한다고 이 관계자들은 말했다. A변호사는 “어디에 배당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고, 기관의 책임자가 판단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B변호사도 “총장이 결정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지면 된다”고 했다.

윤 총장은 감찰 대신 인권감독관의 진상조사를 택하면서 한동수 대검 감찰부장과 또다시 갈등을 빚고 있다. 한 부장은 지난 4월 17일 진정 사건을 접수받고서도 약 40일이 지난 지난달 28일에야 윤 총장에게 보고했다. 이에 대해 B변호사는 “이만한 사건은 바로 보고가 이뤄졌어야 한다”고 했다. 감찰 권한을 둘러싼 둘의 갈등은 지난 4월 이른바 ‘검언유착’ 의혹 사건을 두고서도 있었다.

윤 총장이 보고 직후 이번 사건을 인권 담당 부서에서 처리토록 지시했음에도 한 부장은 진정서 원본 반환을 거부했다. 결국 사건이 서울중앙지검 인권감독관 앞으로 배당될 때에는 진정서 사본이 쓰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검찰 내부에서는 ‘항명’이라는 반응이 나왔고, 외부에서는 “윤 총장의 조직 장악력이 떨어졌다는 신호”라는 해석이 제기됐다. 한 부장의 원본 반환 거부를 놓고 A변호사는 “총장의 말에 수긍하지 못하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라고 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윤 총장의 배당을 두고 “감찰 사안을 인권문제로 변질시켰다”며 윤 총장을 정면 비판했다. 발언 직후 대검은 “징계시효가 완성돼 감찰본부의 소관이 아니다” “진정인도 서울중앙지검에서 해당 건을 조사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한 부장은 자신이 휘하 감찰3과장의 의견을 묵살했다는 언론 보도를 부인했다. B변호사는 “내부 분열이 표출된다고 보는 게 맞다”고 말했다.

허경구 이가현 기자 ni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