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도를 넘는 대남 공세에 우리 정부가 무기력한 모습을 노출하면서 문재인정부 외교안보 라인이 총체적 난국에 빠졌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북·미 비핵화 협상의 진전만 바라보다 독자적인 대북정책을 추진할 모멘텀을 놓쳤고 결과적으로 남북 관계를 위기에 빠뜨렸다는 주장이 정치권을 중심으로 제기됐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까지 포함하는 전면적 쇄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힘을 얻는 상황이다.
최근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의 비난 담화에 이은 북한의 대남 공세로 남북관계가 파탄 직전으로 치달으면서 외교안보 라인 쇄신 주장에 더욱 힘이 실렸다. 정부는 김 제1부부장의 첫 담화 직후 대북전단의 법적 규제 조치를 발표하는 등 발 빠르게 움직이는 듯 했지만 북한이 아랑곳 않고 공세 수위를 더욱 높이자 속수무책 상태에 놓이고 말았다. 북한의 의도를 제대로 분석하지 않고 섣불리 정 실장과 서 원장을 대북 특사로 파견하겠다고 제안했다가 역공을 자초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외교안보 라인 책임론은 지난해 2월 ‘하노이 노딜’ 사태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국가안보실과 국정원 등 외교안보 라인 전반에 걸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과의 합의를 거부할 가능성은 거의 예상치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국가안보실은 지난해 8월 일본의 대한(對韓) 수출규제 조치를 풀기 위한 지렛대로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카드를 꺼내들었다가 미국의 격렬한 반발을 샀다. 국가안보실이 당시 상황을 오판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일부에선 국가안보실이 민감한 외교안보 관련 정보를 움켜쥐고 일선 부처에 공유하지 않는다는 시각도 제기됐다.
여권 일각에서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개편론도 나오고 있다. NSC 상임위원장 직책을 지금처럼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아니라 부처 장관에게 넘겨줘야 한다는 것이다. 노무현정부 당시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 NSC 상임위원장을 겸직했던 사례가 거론된다.
부처 간 협력과 소통 등 외교·안보 업무 프로세스 전반을 점검할 필요성도 제기됐다. 실제로 문재인정부 들어 외교부와 통일부 등 내각 부처가 정책 결정 과정에서 목소리를 거의 내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많았다. 군사전문가인 김종대 전 정의당 의원은 MBC 라디오에서 “정보를 누가 독점하고 쥐지는 않는가, 부처에 내장된 불만은 없는가, 이런 것들을 종합적으로 점검하는 터닝 포인트의 계기가 왔다”고 강조했다.
다만 문재인정부 외교·안보정책 방향 자체가 위기를 맞은 상황에서 인적 쇄신만으로는 큰 변화를 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현재 북·미 대화가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어 문재인정부의 남·북·미 선순환론이 재가동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올해 11월 대선을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미 대화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고 북한까지 대남 총공세에 나서면서 현재로서는 우리 정부가 움직일 공간이 거의 없다.
문재인정부 청와대 국정상황기획실장을 지낸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외교안보 라인 전체의 문제라는 점에 충분히 동의하는 지점이 있다”면서도 “지금 상황에서 인사 조치를 바로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우리 정부가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차분한 계획과 장기적 로드맵을 봐야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도 김연철 통일부 장관의 사표를 재가하지 않았다. 하지만 반려 가능성은 낮다는 평가다. 김 장관 사의 표명 이후 외교안보 라인 전면 개편 목소리가 터져 나오자, 적절한 사표 수리 시점을 고심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사의를 표명했냐는 질문에 대해 “사의 표명이라는 얘기는 처음 듣는 얘기”라며 “인사와 관련된 부분은 최종 결정되면 그때 공식적으로 발표를 하겠다”고 말했다.
조성은 임성수 박재현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