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손흥민이 돌아온다

입력 2020-06-18 16:38
손흥민이 돌아온다. AP뉴시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해외 축구 팬들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금단 현상’을 겪었다. 지난 3월 10일 이후 중단된 EPL 탓에, 각종 축구 커뮤니티엔 “퇴근 이후 할 일이 없어졌다”는 식의 성토가 쏟아졌다.

팬들이 손꼽아 기다리던 EPL이 18일(한국시간) 애스턴 빌라-셰필드 유나이티드의 맞대결을 시작으로 100일 만에 무관중 재개됐다. 선두 리버풀의 30년 만의 리그 우승 여부 뿐 아니라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진출 하한선인 4위 자리를 두고 펼쳐질 ‘역대급 경쟁’도 흥밋거리다. 하지만 무엇보다 ‘월드클래스’로 발돋움한 손흥민(28·토트넘 홋스퍼)의 활약 여부에 한국 팬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슈퍼 소니’ 손흥민은 20일 오전 4시15분 열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홈 경기에 선발 출전할 걸로 예상된다. 손흥민은 지난 2월 빌라전 도중 오른팔을 다쳐 수술을 받았다. 시즌 아웃이 걱정될 상황이었지만 코로나19가 손흥민에겐 전화위복이 됐다. 재활과 함께 해병대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받는 등 알찬 시간을 보낸 손흥민은 남은 9경기를 소화할 컨디션을 회복한 상태다. 현지 언론도 “손흥민이 재개에 맞춰 완벽한 몸 상태를 만들었다”며 맨유전 출격을 예고했다.

손흥민의 가세는 토트넘에게도 큰 호재다. 토트넘은 29라운드까지 20개 팀 중 8위(승점41)에 그치고 있다. 4위 첼시(승점 48)와는 승점 7점 차. 올 시즌 챔스에서도 탈락한 상태라 어떻게든 4위에 턱걸이해야 하는 토트넘 입장에선 공격진에 활력을 불어넣는 손흥민의 존재가 절실하다.

영국 현지에서도 그런 손흥민에 대한 찬사가 이어지고 있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18일 “토트넘 다니엘 레비 회장이 코로나19로 인한 재정 위기에도 팀 내 스타 선수인 손흥민과 델레 알리에게 향할 제안을 모두 거절할 것”이라며 손흥민의 팀 내 중요도를 전했다. 지난 16일엔 올 시즌 EPL에서 가장 뛰어난 활약을 펼친 선수 20명을 선정하며 손흥민을 15위로 꼽기도 했다. 잉글랜드 축구 레전드 이안 라이트도 최근 인터뷰에서 “손흥민이 바르셀로나-레알 마드리드 같은 빅 클럽으로부터 주목 못 받는 게 놀랍다”며 “속도와 득점력 등 모든 것을 갖췄다”고 호평했다.

올 시즌 리그 9골(7도움)을 기록 중인 손흥민은 한 골만 더 넣으면 4시즌 연속 리그 두 자릿수 득점을 달성한다. 컵대회를 포함하면 16골(9도움)을 기록하고 있어 4골만 더하면 2시즌 연속 20골 고지에도 오른다. 중단 전까지 치른 5경기에서 연속골을 기록한 손흥민이라 어느 때보다 그의 발끝에 팬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단독 선두 리버풀(승점 82)은 2위 맨체스터 시티(승점 60)을 22점 차로 앞서고 있다. 두 팀 모두 남은 경기에서 연승을 이어간다고 가정할 때 다음달 3일 양 팀의 맞대결 혹은 이튿날 빌라전에서 리버풀의 30년 만의 1부리그 우승 겸 EPL 첫 우승이 확정될 가능성이 높다. 재미있는 건 4위 첼시와 19위 빌라의 승점 차도 22점 밖에 안 난단 점이다. 챔스 진출을 둘러싼 각 팀의 경쟁이 어느 때보다 뜨거워질 이유다. 현실적으로 9위 아스널(승점 40)까지는 마지막까지 진출권을 두고 치열한 각축을 벌일 전망이다.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 문구를 새긴 유니폼을 입은 채 골 세리머니를 하고 있는 맨시티 필 포든(왼쪽)과 라힘 스털링. 로이터연합뉴스

한편 재개된 EPL에서 선수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인종차별 철폐 운동을 지지하는 ‘무릎 꿇기’였다. 빌라-셰필드, 맨시티-아스널전에서 선수·심판들은 경기 시작 후 10초 간 그라운드에서 한 쪽 무릎을 꿇으며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에 동참했다. 모든 선수들이 등번호 위 이름이 새겨질 자리에 해당 문구를 달고 뛰기도 했다. 경기 뒤 결승골을 넣은 맨시티 흑인 공격수 라힘 스털링은 “모두가 함께 무릎을 꿇은 건 EPL의 큰 도약”이란 코멘트를 남겼다. 빌라-셰필드는 0대 0으로 비겼고, 맨시티는 아스널을 3대 0으로 눌렀다.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