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남편을 잔혹하게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고유정(37)이 자신의 혐의를 인정하면서도 구체적인 살해 정황에 대해서는 줄곧 변명으로 일관했다.
고유정은 17일 광주고법 제주재판부 형사1부(부장판사 왕정옥) 심리로 열린 항소심 결심 공판에서 “피해자(전남편)를 만나기 전 믹서기와 휴대용 가스버너 등을 왜 샀느냐”는 판사의 질문을 받고 잠시 머뭇거리다 “제가 물건을 한 번에 사는 습관이 있어 여러 개의 조리도구를 사게 됐다. 곰탕솥도 하나는 친정어머니가 쓸 수 있다 생각해 구입한 것”이라고 답했다.
언급된 물품은 고유정이 전남편인 강모(사망 당시 36세)씨를 살해한 후 시신을 훼손하는 과정에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증거품들이다. 앞서 경찰은 고유정을 검거한 후 흉기와 믹서기, 휴대용 가스버너, 곰탕솥 등을 계획적 살인의 증거품으로 확보한 바 있다.
믹서기에 대해서는 “홈쇼핑에서 구입했는데 (현)남편이 퇴직금을 받아 식당을 운영하겠다는 꿈이 있어 제가 요리솜씨가 있는 걸 알고 조리를 맡을 경우를 대비해 구입했다”고 부연했다.
판사가 답변을 들은 뒤 “물품을 범행에 사용했느냐”고 재차 묻자 고유정은 완강하게 부인했다. 그는 “절대 그것들은 범행에 사용되지 않았다”며 “(검거 당시) 차안에 각종 물건이 많았던 것도 내가 차를 (현)남편과 싸운 후 일종의 안식처로 여겼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판사는 고유정이 전 남편을 살해하던 상황에 대해서도 꼼꼼히 물었다. 당시 수박을 자르던 상황이었는데, 수박이 왜 그대로인 상태로 발견됐느냐는 질문이었다. 이에 고유정은 “당시 전남편이 (성)접촉을 시도해 수박을 먹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고유정은 지난해 5월 25일 제주 한 펜션에서 전 남편 강모(사망당시 36세)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하고 은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또 지난해 3월 2일 충북 청주의 자택에서 잠을 자던 의붓아들 A군(사망당시 5세)을 숨지게 한 혐의로 지난해 11월 7일 추가 기소됐다.
검찰은 이날 고유정의 항소심 결심 공판에서 “법정최고형인 사형을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검찰은 “범행 수법이 지나치게 잔혹해 피고인에게 사형만으로는 형이 가벼운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며 “반성의 기미가 전혀 없는 점 등을 종합해 사형을 선고해달라”고 밝혔다.
고유정은 최후 진술을 통해 “저는 ○○이(의붓아들)를 죽이지 않았다. 집 안에 있던 2명 중 한명이 범인이라면 상대방(현남편)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 죽으려고도 해봤지만 그래도 살아남은 것은 남은 ‘애새끼’가 있기 때문이다. 죽어서라도 제 억울함을 밝히고 싶다. 믿어 달라”며 눈물로 호소했다.
이날 고유정은 자필로 작성한 5∼6장 분량의 최후 진술서를 끝까지 읽어 내려가며 전 남편에 대한 계획적 살인 등 자신의 혐의를 모두 부인했다. 다만 말미에는 살해된 전 남편과 유족을 향해 “사죄드린다. 죄의 대가를 전부 치르겠다”고 언급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