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검찰 “피고(고유정)는 계획적인 연쇄살인범”

입력 2020-06-17 17:56 수정 2020-06-17 18:02

전 남편을 무참히 살해한 혐의로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고유정이 항소심 재판에서 “(자신으로 인해)아빠를 잃게 된 아들에게 사죄하고 싶다”고 울먹였다. 의붓아들 살해 혐의에 대해서는 여전히 적극 부인했다. 전 남편 살해도 계획 살인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고유정은 17일 광주고법 제주 제1형사부(부장판사 왕정옥) 심리로 열린 전 남편 살인, 사체손괴, 사체은닉 및 의붓아들 살해 사건 항소심 결심 공판에서 피고인 최후진술을 통해 이같이 말했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다”고 말문을 연 고유정은 의붓아들 살해 혐의를 적극 부인했다.

고유정은 “의붓아들이 죽은 날이 (재혼 후 두 번째) 유산 후 10일째 되는 날이었다. 아이들(의붓아들과 친아들)이 청주로 온다고 해서 그 겨울에 중고 책을 구하러 그렇게 다녔는데”라며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죽였다면 애 아빠가 아니겠느냐. 내가 죽이지 않았다”고 강하게 부인했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말도 했다.

고유정은 “나는 평범한 주부였고 1년 전 유치장에 갇히며 모든 게 달라졌다”고 했다.

고유정은 “이혼 후 인터넷 쇼핑과 인터넷 검색 등에 기대 살아왔고, 맺고 끊는 걸 잘 못 해 사건 당일 펜션으로 따라오겠다는 전남편도 막지 못했다”며 “남과 다투는 일 없이 밝고 즐겁게 살아온 내가 한 번의 결혼과 이혼, 재혼으로 이 상황이 됐다. 나를 위해서는 다 포기했지만, 아빠와 엄마 없이 살아갈 내 아이를 위해서는 포기할 수 없다”며 재판장에 선처를 구하기도 했다.

전 남편 살해에 대해서는 결코 우연이었다고 강조했다.

고유정은 “전 남편과 아이와 함께 만난 사건 당일(면접교섭일) 3시쯤 아이가 쉬고 싶다고 해서 예약했던 펜션으로 갔는데 교섭시간이 3시간 정도 남았기 때문에 함께 가겠다는 남편을 막지 못했다”고 말했다.

당일 상황에 대해서는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던 중 방안에서 게임을 하던 아들이 수박이 먹고 싶다고 해 막 수박을 썰려고 하던 찰나 남편이 성적인 접촉을 시도해 왔고, 이를 막는 과정에서 칼로 남편을 찌르면서 상황이 급박하게 흘러갔다”고 했다. “당시 남편이 저녁을 먹은 뒤 마지막으로 통화했던 사람은 가족이 아니라 나이트에서 만난 중국 여자였다”고도 진술했다.

고유정은 “이후 혼이 나간 상태에서 밤을 새우고 다음 날 아이를 친정에 맡긴 뒤 다시 펜션으로 돌아와 (사체 손괴를)시작했다”고 말했다. 그 다음 상황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고유정은 “만일 내가 계획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면 몸집이 작은 여자로서 더 편리한 방법을 찾지 않았겠느냐”며 “흥건한 피를 닦을 때도 펜션에 있던 수건을 이용해 겨우 닦아냈다”고 살인의 우발성을 거듭해 설명했다.

그러면서 “대가를 치르겠다. 유족과 고인에게도 사죄한다”며 “특히 아빠를 잃은 내 아이에게도 사죄하고 싶다”고 울먹였다. 재판부에 대해서는 “언론과 여론의 압박이 크겠지만 부모 없이 자랄 내 아이를 위해 용기를 내달라”며 판결의 선처를 구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검찰의 최종 의견은 사형이었다. 전남편 살해 손괴 은닉 혐의만 인정한 1심 판결(무기징역 선고)에 의붓아들 살해 혐의까지 인정해 형량을 구형했다.

검찰은 질식사한 아이의 얼굴에 울혈이 없는 점, 미국 국립의학도서관의 관련 논문을 검색한 결과 생후 52개월 무렵의 아이가 함께 자던 성인의 신체에 눌려 질식사한 경우가 세계적으로 단 한 건도 없는 점을 근거로 타살이 명확하다고 판단했다.

그렇다면 같은 공간에 있던 고유정과 의붓아들의 친부(사건 당시 고유정 현 남편)가 범인인데, 사건 발생 시각 잠을 자고 있지 않던 사람은 피고라는 것이다.

검찰은 사고 전날 고유정이 낮잠을 충분히 잔 점, 사건 당일 새벽 카톡을 하고 항공권을 구매한 점을 들어 고유정의 범행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특히 범행 동기와 관련해 고유정의 사건 전 메시지 내용과 사건 발생 후 구호 활동이 적었던 점, 사고 직후 친정 엄마와의 통화에서 단 한 번도 사망한 의붓아들에 대한 슬픔을 드러내지 않고 오히려 ‘불쌍하지 않다’ ‘얘기하지 마’ 등의 발언을 한 점에 주목했다.

검찰은 전 남편 살해와 의붓아들 사망 사이에는 유사점이 많다고도 주장했다.

검찰은 전 남편은 면접교섭 첫날 의붓아들은 청주에서 함께 살기로 한 이튿날 각각 사망한 점, 청주(의붓아들 친부)에서 사용한 수면유도제는 제주에서 구입하고 제주(전남편)에서 사용한 수면유도제는 청주에서 구입한 점, 각각의 범죄에 대한 형사처벌을 회피하기 위해 전 남편에 대해서는 본인인 척 성적 행위를 사과한 내용이 담긴 메시지를 보내고 의붓아들에 대해서는 당시 남편에게 잠버릇이 고약하다는 메시지를 보낸 점을 들며 “피고는 계획적인 연쇄살인범”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재판에는 의붓아들 부친과 전남편 유족 측 변호사가 방청석에 앉아 내용을 경청했다. 의붓아들 부친 변호를 맡은 이정도 변호사는 할 말이 있느냐는 재판장의 말에 “의붓아들 살해 사건의 직접 증거가 없는 것은 초동수사가 미흡해 증거수집에 차질이 있었던 만큼 직접 증거가 없을 경우 피고인에 대해 무죄를 추정하도록 한 원칙을 다소 완화해 판결을 내려 달라”고 요청했다.

전남편 유족 변호를 맡은 강문혁 변호사는 “합리적 의심의 정도를 관념적으로 보는 (재판부의 판단에)부분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싶다”며 “의붓아들 살해 혐의를 인정하지 않은 원심의 무기징역 판결은 과소하다”고 주장했다.

항소심 선고는 내달 15일 오전 10시로 예정됐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