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사 제안에 ‘광대극’ 공개조롱한 북한, 이래도 믿을 수 있나

입력 2020-06-17 17:27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8년 2월 11일 서울 중구 국립중앙극장에서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북한이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특사 제안을 일방적으로 공개하며 이를 조롱거리로 삼았다. 북한은 문 대통령이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을 대북 특사 자격으로 파견하고 싶다는 뜻을 지난 15일 김 위원장 앞으로 전달했지만,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이를 거절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17일 공개했다.

중앙통신은 “15일 남조선 당국이 특사파견을 간청하는 서푼짜리 광대극을 연출했다”며 “남측은 문 대통령이 우리 국무위원장 동지에게 특사를 보내고자 하며 특사는 정 실장과 서 원장으로 한다면서 방문시기는 가장 빠른 일자로 하며 우리측이 희망하는 일자를 존중할 것이라고 간청해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남측이 앞뒤를 가리지 못하며 이렇듯 다급한 통지문을 발송한 데 대해 김 제1부부장은 뻔한 술수가 엿보이는 이 불순한 제의를 철저히 불허한다는 입장을 알렸다”고 전했다.
통신은 특히 문 대통령을 겨냥해 “남조선 집권자가 위기극복용 특사 파견놀음에 단단히 재미를 붙였다. 이제 더는 그것이 통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똑똑히 알아두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우리 정부의 특사 제안은 국정원과 통일전선부 간 핫라인을 통해 전달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특사 파견 관련 접촉 내용을 공개한 것은 우리 측에 망신을 주고 대화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한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은 지난해 11월에도 문 대통령 친서를 일방적으로 공개했었다. 당시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을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 참석토록 초대장을 보내며 직접 참석이 불가능할 경우 특사를 대신 보내도 된다는 뜻을 전했다. 그런데 북한은 친서 내용을 약 2주 후 공개적으로 거절 의사를 밝혔다.

북한은 이명박정부 시절인 지난 2011년에도 남북 비밀접촉 내용을 일방적으로 공개해 파장을 일으켰다. 당시 조선중앙통신은 정부 고위 당국자의 실명을 적시하며 그 해 5월 베이징 비밀접촉에서 우리 측이 남북 정상회담을 “구걸했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남측이) 천안함·연평도 사건에 대해 더 이상 거론하지 않겠으니 비밀접촉을 갖자고 했다”고 밝혔다. 이에 우리 정부는 “천안함·연평도 사건에 대한 사과를 요구했다”고 반박했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 교수는 “비공개 특사 제안을 공개한 건 국제 외교 규범을 깬 것”이라며 “남측을 몰아붙이고 망신을 주겠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모든 라인은 끊었지만 국정원과 통전부 간 라인은 살아 있는 점은 눈에 띈다”고 덧붙였다.

이상헌 기자 kmpap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