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가의 스테로이드 제제인 ‘덱사메타손’이 코로나19 치료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2차 파도’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전해진 예상치 못한 희소식에 전세계가 “획기적인 발견”이라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영국 BBC방송 등은 16일(현지시간) 정부가 스테로이드제의 일종인 ‘덱사메타손’을 코로나 19 치료제로 긴급승인했다고 전했다. 덱사메타손은 주로 관절염이나 심한 알러지, 천식, 일부 암 치료에 사용돼 왔다.
앞서 이날 옥스퍼드대 연구진은 덱사메타손의 코로나 19 치료 효과에 관한 연구성과를 공개했다. 연구진이 실시한 임상시험에서 덱사메타손을 투여했을 때 코로나19 중증 환자의 사망률은 눈에 띄게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옥스퍼드대는 지난 3월부터 지난주까지 말라리아약으로 알려진 하이드록시클로로퀸과 렘데시비르, 덱사메타손 등의 코로나19 치료 효과에 대해 임상시험을 진행했다. 그 중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은 심장합병증 등을 일으킬 수 있어 치료에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결론이 났다. 렘데시비르는 초기 감염 환자의 회복 속도를 줄이는 것으로 나타나 먼저 코로나19 치료에 사용이 허가됐지만 중증 환자의 치사율을 낮추는 효과는 확인되지 않았다.
연구진이 환자 2000여명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진행한 결과 산소 호흡기가 필요한 중증 환자의 경우 덱사메타손을 투여했을 때 치사율은 28%로 나타났다. 덱사메타손을 투여하지 않은 환자들의 치사율은 40%였다.
연구진은 “팬데믹 초기에 덱사메타손을 사용했다면 최대 5000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라면서 “특히 가난한 국가들에서 코로나19 환자를 치료하는 데 효과를 발휘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덱사메타손은 신체의 면역 체계가 바이러스와 싸우기 위해 과잉 반응할 때 이를 막아주는 효과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이토카인 폭풍’으로 불리는 이 증상은 체내 면역 물질인 사이토카인이 과도하게 분비돼 정상 세포를 공격해 젊은 환자들의 치사율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를 이끈 피터 호비 교수는 “덱사메타손은 현재 상황에선 코로나19 환자의 치사율을 낮춘 유일한 약물”이라면서 “코로나19의 주요 돌파구”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약을 임상시험 에 포함한 이유는 즉시 사용이 가능하고 저렴하며, 이미 잘 알려진 약이기 때문”이라면서 “2003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이 처음 유행했을 때도 스테로이드 제제가 치료에 사용됐지만 일부 위험을 유발한 사례도 있어 치료 효과에 대해 명확한 결론이 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덱사메타손을 투여하는 치료 기간은 최대 열흘로 치료 비용은 하루에 5파운드(약 7600원) 가량이다. 덱사메타손을 투여해 코로나19 환자를 치료할 때 환자 1명당 하루 투여량은 6㎎이며 주사 방식과 경구 투여 방식 중에 선택할 수 있다. BBC에 따르면 현재 영국은 20만명분의 덱사메타손을 보유하고 있다.
보리스 존슨 총리는 덱사메타손의 코로나19 치료 효과가 입증된 데 대해 “영국 과학계의 주목할만한 성과”라면서 “2차 파도에도 대비할 수 있는 만큼의 덱사메타손 재고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맷 행콕 보건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덱사메타손은 저렴하고 집에서 보관할 수 있기 때문에 즉각적으로 생명을 구할 수 있다”면서 “코로나19 환자에게 즉시 처방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이 약은 입원 환자가 아닌 일반 환자가 구매해 임의로 사용할 수는 없으며 두통과 어지러움, 불면증, 우울증 등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연구진은 “증상이 미미한 환자의 경우 호흡기 치료 등에 유의미한 효과를 나타내지 않았다”고 전했다.
CNN방송은 “미국에서도 최저 8달러(약 9700원)에 1일 투여분의 덱사메타손을 구매할 수 있다”면서 “미국에선 팬데믹 초기부터 일부 환자들의 치료에 사용해 왔다”고 전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에 대해 “과학으로 획기적인 돌파구를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매우 훌륭한 소식”이라면서 “영국 정부에 축하를 보낸다. 옥스퍼드대와 병원, 시험에 참여한 여러 환자에게도 감사하다”고 말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