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외비’ 부동산 대책, 발표 1시간 전 온라인 유출 ‘발칵’

입력 2020-06-17 16:50 수정 2020-06-17 17:00
17일 오전 9시쯤 한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 정부가 발표할 예정이었던 부동산 대책 관련 자료가 공유됐다. 자료에는 '대외 비공개' 문구가 적혀있어 정부 내부에서 유출 된 것으로 추정된다.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 화면 캡처

17일 오전 9시쯤 1300여명이 참여한 부동산 관련 단체 채팅방에 ‘주택시장 안정을 위한 관리방안’이라는 제목의 PDF파일이 올라왔다. 28페이지 분량의 이 문서에는 한 시간 후 정부 관계부처가 합동으로 발표할 6·17 종합대책에 관한 내용이 그대로 담겨있었다. 오른쪽 상단에는 ‘대외 비공개’라는 빨간색 글자가 선명히 적혀 있었지만, 불특정 다수에게 속수무책으로 노출돼 공유됐다. 같은 일이 비슷한 시간 대부분의 부동산 단체 채팅방과 커뮤니티에서도 벌어졌다.

정부가 이날 규제지역을 대폭 확대하고 갭투자를 차단하는 고강도 부동산 종합대책을 내놨지만, 발표 전에 자료가 사전 유출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유출된 자료에는 언론 배포 자료와 달리 ‘대외 비공개’라는 문구가 명시돼 있어 정부 내부에서 새나간 것으로 보인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뒤늦게 유출 경위를 조사해 엄중 처벌 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정부는 전날인 16일부터 대책 발표 일정부터 주요 내용까지 보도를 금지하는 ‘엠바고’를 설정하며 철통 보안을 예고했다. 사전에 대책이 새나갈 경우 투기 수요가 보유한 주택을 급매로 처분하거나 사전에 법인을 정리하는 등의 시장 혼란을 우려해서다. 주무부처인 국토부는 언론사에 자료 유출을 방지해달라며 각별한 주의를 요청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보안은 정작 정부 내부에서 깨졌다.

게다가 정부는 자료가 사전에 유출됐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김 장관은 이날 열린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에서 자료 유출 관련 질문을 받은 이후에야 정보 유출 사실을 인지했다. 김 장관은 “자료 유출이 사실인지 우선 조사해보겠다. 만약 사실이라면 엄정하게 처벌하는게 맞다”고 말했다.

문제는 파급력이 큰 정부의 부동산 대책 사전 유출은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2018년 9월 경기도 신규 공공택지 개발정보가 국토부 직원에 의해 유출됐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로부터 3기 신도시 후보지 추정 개발도면이 외부로 새나가는 보안 사고를 겪기도 했다.

일부에선 이처럼 정부가 부동산 대책을 내놓더라도 시장이 한발 앞서 정보를 입수하기 때문에 집값 잡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것 아니냐는 자조마저 나온다. 실제 이날 대책이 발표된 직후 유튜브에 6·17 대책에 대한 해설을 붙인 영상들이 게재되기도 했다. 직장인 정모(40)씨는 “부동산 대책이 발표되면 뉴스보다는 부동산 카페나 파워블로거, 유튜버 등의 해설을 듣고 카페나 밴드 등을 통해 부동산 투자 정보 등을 얻는다. 언제나 그렇지만 이번에도 대책의 틈새를 파고들 투자전략이 하루만 지나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양지영R&C연구소장은 “시장의 기대감이 꺾이지 않는 이상 투기수요는 또다른 규제 구멍을 찾을 수밖에 없다. 투기과열지구보다 상대적으로 대출 규제가 덜한 조정대상지역 내에서 9억원 이하 아파트에 수요가 옮겨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세종=전성필 기자, 이택현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