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다큐소설] 청계천 빈민의 성자(25): 기숙사에 고립된 대학생

입력 2020-06-17 09:57
註: 예수와 같은 헌신적 삶을 살고자 1970년대 서울 청계천 빈민들과 함께한 노무라 모토유키 목사(노 선생)와 빈민운동가 제정구 등이 겪은 ‘가난의 시대’. 그들의 삶을 통해 복음의 본질과 인류 보편적 가치 그리고 한국 교회의 민낯을 들여다볼 수 있는 다큐 소설이다. 국민일보 홈페이지 ‘미션라이프’를 통해 연재물을 볼 수 있다.

2011년 자신이 졸업한 켄터키성서대학 강단에 선 노 선생. 치과대학 권유를 뿌리치고 신학 공부를 택한다.

유학 생활 초기는 짧은 영어 실력으로 생활하기가 쉽지 않았다. 또 일본의 가난한 유학생이 돈이 풍족할 리 없어서 동창들과 어울리기도 쉽지 않았다. 주말이면 기숙사에 남아 성경을 들여다보며 시간을 보내야 했다.

무엇보다 미국식 삶이 그러하지만 차가 없이는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렇다 보니 대중식당조차 갈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주중에 준비해 둔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며 하는 성경과 영어 공부였다.

특히 영어는 내가 미국 유학 생활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해야 했다. 쑥스러운 고백이나 당시 너무 열심히 공부해서 영어사전이 닮아 너덜너덜하게 헤어질 정도였다. 하지만 이때 제대로 먹지 못하고, 너무 책만 들이 판 탓에 심각한 시력 저하가 왔다.

어느 정도 학교생활이 안정을 찾아갈 즈음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나를 이 학교에 추천해준 선교사였다.

“노무라 군, 이제 영어 실력도 어느 정도 되고 하니 치과대학으로 진학하게. 치과대학에 가서 의사가 되어도 선교의 길은 얼마든지 열리네. 나는 당신이 그렇게 할 것으로 믿네.”

내 삶의 목표가 타인에 의해서 바뀌는 순간이었다.
“저는 하나님께 이미 서원했습니다. 그렇게 할 순 없습니다. 양해해 주십시오.”

그 선교사는 자신이 치과의로 일본에서 선교 활동을 해서 그랬던지, 자신과 같은 삶을 살기를 바랐던 것 같다. 그래서 자기 사람으로 만들어 자신이 속한 단체에서 일을 시키려 했다.

문제는 그 이후에 벌어졌다. 내가 말을 듣지 않자 그 선교사는 후원금을 끊어 버렸다. 심지어 자신이 대준 뱃삯까지 내놓으라고 엄포를 놨다. 정말이지 황당하고 막막했다. 이역만리에서 어떻게 살라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기도만이 유일한 구원이었던 시절이었다.

나는 기숙사 방을 빙빙 돌면서 학교를 그만두어야 하는 것이냐고 하나님께 물었다. 후원금이 끊어지면 학교도 다닐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계속>

작가 전정희
저서로 ‘예수로 산 한국의 인물들’ ‘한국의 성읍교회’ ‘아름다운 교회길’(이상 홍성사), ‘아름다운 전원교회’(크리스토), ‘TV에 반하다’(그린비) 등이 있다. 공저로 ‘민족주의자의 죽음’(학민사), ‘일본의 힘 교육에서 나온다’(청한)가 있다.

전정희 기자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