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시작이에요. 이전까지 성장하며 색을 입히는 시간이었다면, 지금은 진가를 펼쳐보여야 하는 시기죠.”
지난 12일 제주 서귀포의 프로축구 K리그2 제주 유나이티드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주민규(30)의 떡 벌어진 어깨는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바라보이는 남해 바다만큼 넓었다. 183㎝로 스트라이커 치고 크지 않은 키지만, 부모님께 통뼈를 물려받았다는 그의 체구는 누구보다 단단해 보였다. 장점인 ‘힘’에 대한 욕심에 전신 서킷 트레이닝을 자주한다는 그는, 부리부리한 눈을 치켜뜨며 “늦게 프로에 입문했고, (공격수로서도) 늦게 시작했기 때문에 이제부터가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 모습은 마치 단기필마로 장판교에 서서 백만 대군을 노려보던 장비 같았다.
그의 말처럼, 주민규가 스트라이커로 성공시대를 열기 시작한 건 프로 3년차인 25살 시절부터다. 전까지 그는 사연 많던 수비형 미드필더였다. 한양대를 졸업한 주민규는 프로에 지명되지 못해 2013년 커리어를 마감할 뻔 했다. “너무 울어서 숨이 안 쉬어질 정도였다”는 고통의 시기, “하나님의 아들로 쓰임 받게 해달라”는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가 통해서였을까. 2부 고양 Hi FC가 그에게 손을 내밀어 주민규는 간신히 연습생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2015년 서울 이랜드 시절은 전환점이었다. 마틴 레니 감독은 “센터 포워드를 하면 이동국 김신욱 같은 선수가 될 수 있다”며 주민규를 영입해 붙박이 스트라이커로 썼다. 주민규는 잠재된 ‘킬러본능’을 드러낸다. 2015년 40경기 23골 7도움, 이듬해 29경기 14골 3도움. 무명이었던 주민규는 2부리그를 평정하고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2017년 상주 상무에선 34경기 17골 6도움의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1부에서도 통한다는 걸 증명했다.
지난해 그는 K리그1 ‘2강’ 울산 현대의 유니폼을 입었다. 28경기(선발 13경기) 5골 5도움으로 나쁘지 않은 활약에도 그에겐 ‘프로에 온 뒤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다. 19골로 득점 2위를 차지한 주니오의 백업 역할에 적응해야 했기 때문이다. 주민규는 “처음 로테이션을 해보니 갑자기 경기에 투입되면 템포를 찾기 힘들었다”며 “일주일 간 식사·휴식을 포함해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도 잘 몰랐다”고 상기했다. 이런 저런 방법을 모두 시도해보다가 김도훈 감독의 조언으로 아예 몸을 풀지 않고 나선 경기도 있었을 정도였다.
우승 욕심으로 빅 클럽을 선택했지만, 전북 현대에 단 1득점 모자라 우승도 놓쳤다. 시즌 마지막 포항 스틸러스전(1대 4 패)에 교체로 투입된 주민규는 경기 흐름을 바꿔내지 못했다. 그는 “전북전 1대 1 무승부 이후 우승했다고 생각했다”며 “포항전은 인생에서 가장 큰 경기였는데 끝나고선 너무 허탈하고 아팠다”고 했다.
올 시즌을 앞두고 주민규의 입지는 더 흔들렸다. 울산은 노르웨이 국가대표 비욘존슨을 영입해 주민규는 사실상 3옵션으로 밀렸다. 그런 주민규에게 지난 시즌 강등된 제주는 ‘용병급’ 대우를 보장하며 손을 내밀었다. 울산 사무국장 출신으로 제주에 부임한 김현희 단장까지 설득에 나섰다.
다시 2부 팀으로 가는 것에 의문도 있었다. 김 감독이 “주니오도 계약이 끝나가고 널 더 많이 기용하려 하는데 왜 가려고 하냐”며 붙잡기도 했다. 하지만 주민규는 결국 제주의 손을 잡았다. 그는 “제주가 언제까지 2부에 있을 팀이 아니었고, 저도 경기에 더 많이 뛰어야 묻히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성남 시절부터 주민규 영입에 관심을 가졌던 남기일 감독은 천군만마를 얻었다. 주민규도 남 감독 밑에서 ‘골잡이’로 거듭나고 있다. 주민규는 미드필더 출신답게 경기가 안 풀릴 때 2선으로 내려와 볼을 연계하는 플레이를 즐겨했다. 지난 대전 하나시티즌과의 경기에서도 습관처럼 2선을 넘나들다가 박스 안에서 결정지어주는 역할을 강조하는 남 감독의 심기를 건드렸다. 주민규는 “대전전 이후에 많이 혼났다”며 “이후 감독님 지시대로 인내하고 찬스를 기다리는데, 바로 결과가 나오더라”며 웃었다. 남 감독도 “주민규는 어떻게 쓰는지에 따라 더 좋은 선수가 될 수 있다”며 “불필요하게 사이드에서 힘 빼기보다 중앙에서 찬스를 더 잡는 게 도움이 된다”고 했다.
겉모습만 보면 투박한 플레이만 펼칠 것 같지만, 주민규는 발기술과 골 결정력을 겸비했다. 제주에서도 주민규는 경기당 평균 슈팅(4.2개), 평균 유효슈팅(2개) 리그 전체 2위에 올라있다. 6경기에서 4골을 넣으며 수원 FC 안병준 대전 안드레(이상 6골)에 이은 3위를 질주 중이다. 득점왕 경쟁에 대해 주민규는 “두 선수는 정말 저돌적이고 좋은 선수지만 저희 팀에 좋은 선수들이 많아 득점 찬스가 더 많을 것”이라며 “저만 잘하면 20골 넘게 넣을 수 있다”고 자신했다.
골 결정력의 비결은 훈련이다. 주민규는 “골키퍼들에게 어떤 슈팅이 막기 어려운지 자주 물어보고 그렇게 차려고 연습한다”며 “경기 나서기 전에도 오버헤드킥을 하는 상상, 하프라인에서 골을 넣는 상상 등 이미지 트레이닝을 많이 하는데, 나도 모르게 경기에서 나온다”고 밝혔다. 해외 선수들 중엔 로베르토 레반도프스키(바이에른 뮌헨)의 득점 영상을 자주 본다고 한다.
집돌이인 주민규에게 여유로운 제주 생활은 꼭 맞다. 선후배들과 예쁜 카페를 찾아다니며 소통하는 취미를 들이기도 했다. “유럽 진출은 현실적으로 늦었다고 본다”고 말하는 주민규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우러러봤던 선배’라는 정조국에게 프랑스 시절 훈련법에 대해 물어보며 꿈이었던 유럽 무대를 간접적으로 경험하기도 한다. 제주에 있기 때문에 언젠간 구자철과 함께 뛸 가능성도 있다. 주민규는 “어렸을 땐 친했는데 지금은 너무 잘되셔서 연락을 못한다”며 “멋있는 선배 그 자체라 같이 뛸 수 있다면 말할 것도 없이 좋을 것”이라고 멋쩍게 웃었다.
어느덧 30대가 된 주민규는 몸 관리에도 부쩍 신경 쓰고 있다. 은퇴 후 ‘빵집 사장’을 생각할 정도로 빵을 좋아하지만 잘 먹지 않는다. 훈련이나 치료가 필요한 경우 올해 말 결혼을 앞둔 여자친구와의 데이트도 갑작스레 취소할 정도로 주민규에게 축구는 우선순위다. 주민규는 “이기적일 수 있는데 여자친구가 이해해줘서 너무 고맙다”며 “여자친구도 곧 제주로 내려와 같이 지내기로 했다”고 했다.
주민규가 계속해서 축구에 정진하는 건 태극마크를 다는 꿈 때문이다. 주민규는 “사실 2017년 상무 시절 엔트리에 뽑히지 못한게 가장 아쉬웠다”고 상기했다. 제주에서의 활약은 그래서 더 중요하다. 올 시즌 K리그1 승격, 다음 시즌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진출이란 제주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골을 책임지는 중책을 짊어진 주민규는 한 경기 한 경기 더 집중하고 있다.
전 소속팀 울산과의 맞대결도 주민규에게 동기부여가 된다. 그는 “울산 팬들에게 못 보여드린 게 많아 아쉽고 죄송한 마음이 있다”며 “내년에 K리그1에 가서 더 좋은 선수로 성장한 모습을 꼭 보여주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참 열심히 하는’ ‘언제든지 골이 기대되는’ 선수로 기억되고 싶네요.” 그렇게 마지막 말을 남긴 주민규는 이튿날 수원 FC전에서 참 열심히 뛰었다. 비디오 판독(VAR) 결과 아슬아슬한 오프사이드로 판정돼 아쉽게 ‘4경기 연속골’ 기록은 무산됐지만, 감각적인 헤더로 한 차례 수원 FC 골망을 흔들기도 했다. 초반 분위기가 좋지 않던 제주는 주민규의 활약 속에 3연승과 홈 첫 승을 달성하며 경기 뒤 K리그2 3위에 올랐다.
서귀포=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