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대법원이 15일(현지시간) 게이와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직장에서 차별을 받거나 해고당해서는 안 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들어 보수 색채가 짙어진 대법원이 내놓은 판결이다. 뉴욕타임스(NYT)는 “반세기만의 이정표”라며 갈채를 보냈다.
이번 재판의 주심을 맡은 닐 고서치 대법관은 이날 판결문을 통해 “고용주가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누군가를 해고한다면 여성이나 남성 직원에게는 의문을 갖지 않았던 한 개인의 특성이나 행동을 문제 삼아 해고한 것과 같다”며 “성소수자 역시 민권법 7조의 성차별 금지 조항의 보호를 받는다”고 밝혔다.
미 민권법 7조는 성차별을 불법으로 규정한다. 대법원은 이 조항을 근거로 개인의 성적 지향에 대한 차별도 불법이라고 판단했다. 민권법 7조가 지난 1964년 제정된 이래 성소수자에게까지 확대 적용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미국 전체 주의 절반 가량에서는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해고하는 게 불법이 아니었다. 이번 판결에 따라 성소수자들도 미 전역에서 직장 내 작업자 보호 조처를 받을 수 있게 됐다.
이번 소송은 성 정체성 때문에 직장을 잃은 동성애자 남성 2명과 트랜스젠더 여성 1명이 각각 제기한 소송을 병합한 것이다. 이들은 우연히 성 정체성이 알려지거나 성전환 계획을 공개했다가 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소송 당사자 중 한 명인 스카이다이빙 강사 도널드 자르다는 자신과 함께 몸이 묶인 여성 고객에게 “나는 100% 게이이니 안심하라”고 말했다가 해고당했다.
NYT를 포함해 미 주요 언론들은 성소수자 인권 보호의 분수령이 될 역사적 판결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트럼프 취임 후 급격히 보수화된 사법부가 내놓은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3년이 넘는 재임 기간 동안 ‘종신직’인 연방법원 판사를 200명 넘게 임명했다. 한 사회의 기조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법원 판결을 보수 진영이 주도하기 위해서다. 현재 9명의 대법관 중 트럼프 대통령이 지명한 고서치 대법관을 포함해 5명은 보수 성향, 4명은 진보 성향이다.
하지만 성소수자 반대 진영의 손을 들어줄 것이라고 믿어졌던 고서치 대법관을 포함해 보수 성향인 존 로버츠 대법원장까지 총 6명이 성소수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다른 3명의 보수 성향 대법관만 이번 판결에 반대 의견을 냈다. NYT는 이번 판결에 대해 “20년도 안 돼 미국 사회의 이데올로기 스펙트럼이 얼마나 바뀌었는지 보여준다”며 미국인들 인식의 근본적 변화를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라고 평가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