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양치하다 헛구역질… ‘페인트 수돗물’ 공지 안한 성남시

입력 2020-06-16 11:17 수정 2020-06-16 17:41

경기도 성남 분당구 구미1동에 사는 30대 여성 A씨는 최근 양치질을 할 때마다 헛구역질을 자주 한다. 약 일주일 전부터 수돗물에서 페인트 냄새가 지독하게 풍겼기 때문이다. A씨는 아파트 주민들에 이어 옆동네 주민들까지 인터넷 커뮤니티에 비슷한 내용의 글을 올리는 걸 보고 이 지역 전체 수돗물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A씨는 16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다른 아파트에선 노약자나 어린이들은 수돗물 사용을 자제하라고까지 안내방송이 나왔다고 한다”라며 “혹시 몰라 성남을 벗어나 용인까지 가서 가족들이랑 외식도 했다. 샤워도 못하고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라서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한지도 찾아보고 있다”고 토로했다.

성남에서 수돗물에서 역한 페인트 냄새가 난다며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주민 사례가 늘고 있다. 세탁물에서도 페인트 냄새가 나는가하면, 피부 발진과 헛구역질 증세를 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문제는 성남시의 태도다. 성남시는 배수지의 물탱크 노후화로 방수페인트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수돗물에 페인트 냄새가 스며들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수돗물에서 페인트 성분이 기준치 이하로 검출됐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주민들 우려를 키울까 걱정돼 일부러 공지문을 내놓지 않았다고도 했다.

구미동 무지개마을에 사는 B씨는 15일부터 수돗물에서 페인트 냄새를 맡게 됐다고 한다. 양치하면서 눈이 따가워 재채기가 나올 정도였다. B씨의 어린 자녀 역시 양치하다가 냄새가 심하게 난다며 짜증을 내기도 했다. B씨는 “금곡동 청솔마을에 사는 한 지인은 지난 주말부터 자녀가 피부에 발진이 나기 시작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B씨는 시청에 문의해보니 약품 처리 과정에서 생긴 문제니 걱정하지 말라는 애매한 답변만 들었다고 한다.

성남 지역 맘카페 등 복수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지난 7일부터 15일까지 수돗물에서 나는 페인트 냄새를 문제삼는 글이 여러 차례 올라왔다. 댓글에는 “시금치를 데쳐먹고 쌀도 씻어 밥을 먹었는데 어떡하냐” “손을 아무리 비누로 닦아내도 페인트 냄새가 떠나질 않는다” “수돗물로 세수하고 나서 눈병이 심해졌다” 등 주민들의 원성이 쏟아졌다.

성남시에 따르면 페인트 냄새의 발원지는 배수지 물탱크였다. 분당 지역의 배수지에는 30년이 넘어 물이 샐 정도로 노후화된 1만5000t짜리 탱크가 2대 있다. 이 가운데 1대의 방수페인트 작업을 4월부터 지난 12일까지 진행했고 현재 건조 과정에 있는 상태다.

하지만 두 탱크 간 거리가 불과 몇 미터 차이에 불과해 방수작업을 한 탱크의 페인트 냄새가 다른 탱크로 옮겨간 것이다. 성남시 관계자는 “(페인트 작업을 하지 않은) 한 쪽 탱크에서 물이 차고 빠지는 과정에서 바람이 불어 옆 탱크에서 기화(氣化)된 페인트가 환풍기를 타고 넘어온 것으로 보인다”며 “페인트는 워낙 휘발성이 강해 기체상태에서 수돗물에 용해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성남시는 사실을 알렸다가 주민들의 우려를 키울 것 같아 일부러 공지를 따로 띄우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시 관계자는 “소독할 때 쓰는 염소처럼 수질 측정 결과 기준치 이하의 아주 미세한 페인트 성분만 검출됐다”며 “현재 탱크에 있는 물은 전부 폐수처리했다. 주민들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말했다.

최지웅 기자 wo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