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15일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이 불참한 가운데 단독으로 국회 본회의를 열고 법제사법위 등 6개 상임위원장 선출을 강행했다. 법사위를 자당 몫으로 주장한 민주당과 통합당의 갈등을 더욱 커졌다. 급기야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는 법사위를 지키자는 당론을 지키지 못한 데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뜻으로 사의를 표명했다.
주 원내대표는 이날 홀로 본회의에 참석해 의사진행발언으로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1948년 제헌 국회 이래 국회에서 상대 당 상임위원들을 동의 없이 강제 배정한 것은 헌정사에 처음”이라고 한 주 원내대표는 “오늘은 역사에 국회가 없어진 날이고 일당 독재가 시작된 날이다. 18개 상임위원장을 다 내놓겠다”고 반발했다.
비공개 의총에서도 주 원내대표는 “헌정사상 처음으로 국회의장이 야당 의원을 상임위에 강제배정하고 상임위원장을 선출하는 폭거를 진행 중”이라며 “원내대표로서 책임을 지고 말러나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종배 정책위의장 역시 주 원내대표와 함께 사의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사의 표명 소식에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대부분의 의원들은 주 원내대표의 사퇴를 만류하고 있지만 주 원내대표는 뜻을 굽히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사의 표명 후 “주 원내대표를 재신임해 힘을 모아주자”는 의원들의 의견이 많은 만큼 실제 사퇴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앞서 민주당은 15일 국회 본회의에서 정의당과 열린민주당, 일부 무소속 의원 등 범여(汎與) 197석으로 법제사법‧기획재정‧외교통일‧국방‧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보건복지위 등 6개 상임위원회 구성을 단행했다.
이날 선출된 상임위원장은 윤호중 법사위원장과 윤후덕 기재위원장, 송영길 외통위원장, 민홍철 국방위원장, 이학영 산자위원장, 한정애 복지위원장 등으로 모두 민주당 소속이다. 민주당은 “코로나 국난 극복을 위해 통합당 몽니를 더 이상 봐줄 수 없다”며 단독 원(院) 구성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특히 ‘검찰 개혁 완수’를 위해 기존 관행을 깨고 법사위원장을 민주당 4선인 윤 의원으로 선출해 통합당과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1998년 15대 국회 후반기 이후 권력 분산 차원에서 국회의장과 법사위원장은 한 당이 독식하지 않는다는 게 관행으로 이어졌었다. 통합당은 관례적으로 제1야당이 맡아온 법사위원장을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차지한 것은 ‘폭거’라며 본회의를 보이콧했다.
통합당 지도부와 의원 전원이 본회의장 앞에서 ‘무슨 죄를 지었길래 법사위를 강탈하나’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민주당 의원들을 향해 “민주주의 파괴하는 의회 독재 각성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에 민주당은 측은 “애초 의석수 비율에 따라 18개 상임위 중 11개를 민주당이 7개를 통합당이 가져가는 안을 야당에서 제시했다”며 “오늘 선출한 6개 자리는 원래 민주당 몫에 포함돼 있다”고 맞섰다. 통합당도 “민주당의 일방적 제안이었다”며 반발했다.
주 원내대표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츨 통해 “법제사법위원회를 차지하겠다고 이렇게 몽니를 부릴 때인가”라며 “민주당은 지난 총선에서 얻은 177석이 질적으로 다른 권력이라고 우기다. 1987년 체제 이후 정착된 국회 관행을 ‘잘못된 관행-적폐’라고 주장하면서 자기 하고 싶은대로 국회를 운영하겠다고 한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이 177석이 아니라 277석을 얻었더라도 바꿀 수 없는 게 있다. 그것은 우리의 헌법 정신, 국가 운영의 기본 틀”이라고 한 주 원내대표는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 국민은 민주당과 문재인 대통령에게 잠시 주권을 위임했을 뿐이다. 내일이라도 그 위임을 철회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주 원내대표의 이같은 반발에 홍정민 민주당 원내대변인이 맞섰다. “야당은 정부‧여당에 대한 견제라고 포장하지만 일하지 않는 국회, 태업하는 국회에 불과하다”고 반박한 홍 대변인은 “민주당은 오늘 선출되지 못한 상임위원장 선거 절차도 신속히 진행해 구고히를 정상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위원장을 선출한 상임위부터 가동하고 19일에 열린 본회의에서 나머지 12개 위원회 위원장 선출도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민주당은 상임위원장 선출에 통합당이 협조하지 않으면 예결위원장도 민주당 몫으로 선출할 수 있다고 압박하고 있다. 통합당은 이어질 원구성 협상과 3차 추가경정예산안 처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추천 등 향후 모든 의사일정을 보이콧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처럼 여야 대립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어 당분간 국회가 정상 운영되긴 힘들 것으로 보인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