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힐 전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가 최근 북한의 대남 강경 행보에 대해 한국 정부에 굴욕감을 줌으로써 한미 간 균열을 키우려는 시도로 분석했다.
6자회담 수석대표를 지낸 힐 전 차관보는 15일(현지시간) 싱크탱크 ‘국제 위기 그룹’(ICG)이 진행한 ‘협상 대표들의 조언:북한에 관한 다음 조치들’ 화상 세미나에서 남북관계 단절을 선언하며 대남 군사행동에 나설 것을 강하게 시사한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의 담화 등 북한의 최근 강경 행보의 의도에 대해 이같이 평가했다.
그는 “지난 두어주간 우리가 북한으로부터 본 행동들은 진짜로 미국과 한국이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를 보기 위한 시도다. 나는 그것이 일종의 동맹에 대한 시험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우리는 매우 형편없이 하고 있다. 우리 군에 대한 주둔국의 지원 이슈와 관련된 트럼프의 집착 때문”이라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과도한 방위비 인상 요구가 북한의 위협에 맞선 한미 공조 등에 저해 요소가 된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힐 전 차관보는 “북한이 한국 정부에 굴욕감을 주려고 시도하는 데 있어서 하고 있는 일이 보다 정치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들은 한국과 미국 사이의 간극을 더 벌리려고 시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북한이 트럼프 행정부가 취임했을 때에 비해 한미가 가깝지 않다는 생각에 매우 만족할 수 있다”며 “따라서 우리가 동맹의 결속 문제에 대해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북한이 제재 완화를 원하겠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중국과 긴밀히 협력해야 하는데 중국은 이미 도발적인 시험 발사를 원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해왔다고도 언급했다.
앞서 힐 전 차관보는 지난 11일 정치전문매체 더힐에 실은 ‘한반도의 위기는 동맹의 필요성을 강화한다’는 제목의 기고문을 통해서 “북한이 한미관계를 시험하고 있다”며 “트럼프 행정부가 동맹 보유의 중요성에 대해 분명한 생각을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한편 로버트 갈루치 전 미 국무부 북핵 특사는 이날 세미나에서 북미 비핵화 협상 방식과 관련해 정상회담 방식 자체를 배제하지는 않으면서도 실무협상을 통해 먼저 성과를 도출하는 바텀업 방식에 무게를 뒀다.
지금까지의 북미 비핵화 협상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친분에 의존한 톱다운 방식으로 이뤄졌지만,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북미 정상이 채택한 공동성명과 관련해 이렇다 할 진전을 보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다.
갈루치 전 특사는 북미 정상이 오는 11월 3일 미국 대선 전에 만나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라 나쁜 생각이라며 반대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박장군 기자 genera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