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합의에 실패하면서 박병석 국회의장이 15일 상임위원회 강제 배분을 통해 국회 문을 여는 초강수를 두게 됐다. 국회법에 관련 조항이 생긴 이후 26년 만에 처음이다. 21대 국회 개원 시 더불어민주당에 의해 단독 선출됐던 박 의장은 미래통합당의 반발을 무릅쓰고 민주당의 단독 원 구성 요청을 수용했다.
박 의장은 이날 국회 본회의에서 “여야가 합의하지 못하고 상임위원부터 구성하게 돼서 매우 유감”이라며 “시간을 더 준다고 합의에 이를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코로나와 남북관계 위기 앞에서 민생을 돌보고 안전을 지키는 것보다 소중한 정치권의 사정은 없다”며 “원 구성 갈등과 법제사법위의 월권 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제도화해 달라”고 여야에 요청했다.
박 의장은 본회의에 앞서 통합당 의원들에게 6개 상임위(법사위·기획재정위·외교통일위·국방위·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보건복지위)의 위원직을 강제 배정했다. 국회법 48조 1항 ‘상임위원 선임 요청 기한까지 요청이 없을 경우에는 의장이 상임위원을 선임할 수 있다’는 조문에 의한 결정이었다. 통합당은 끝내 상임위원 안 제출을 거부했다. 본회의에선 법사위 등 6개의 상임위원장 선거의 건이 안건으로 올라 민주당 출신의 각 위원장이 선출됐다.
국회 역사상 의장이 상임위원 전체를 배정한 전례는 거의 없다. 국회 관계자는 “1994년 국회의장이 상임위원 강제 선임권을 가지도록 국회법이 개정된 이후 26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과거 사례를 보면 7대 국회에서 선출된 이효상 국회의장이 단독 개원한 공화당의 입장을 수용해 야당 의원들에게 강제로 상임위를 배정했었다. 등원하지 않은 야당 의원들은 교섭단체가 될 수 없다며 무소속으로 규정하는 논리였다. 당시는 박정희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직후로 6·8 부정선거 파동 때문에 신민당 당선자들이 등원을 거부한 상태였다.
박 의장은 상임위원 강제 배분에 관해 통합당 의원들의 의사를 고려했다고 한다. 의장실 관계자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통합당 상임위원 배정안을 심사숙고해서 만들었다”며 “초선 의원들은 언론 보도를 기준으로 전문성과 경력, 희망 사항을 반영했다”고 말했다.
‘의회주의자’임을 강조하며 여야 협치를 요구해온 박 의장은 정치적 부담을 떠안게 됐다. 그는 지난 5일 본회의에서 의장으로 선출된 직후 민주당을 향해 “압도적 다수를 만들어준 진정한 민의가 무엇인지 숙고하라”고 말했었다.
김용현 신재희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