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에서라도 처단하자” 성범죄자 SNS 신상 박제 논란

입력 2020-06-14 15:41

성착취물을 제작·유포한 텔레그램 ‘박사방’ 유료회원들의 신상공개가 최근 불발됐지만 SNS에선 성범죄 혐의자들의 신상을 직접 공개하는 계정이 운영되고 있다. 일부 시민들은 가해자들도 피해자와 같은 고통을 받아야 한다며 이런 ‘성범죄자 박제’ 시도에 환호하지만 전문가들은 “사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디지털교도소’라는 별칭이 붙은 해당 SNS 계정에는 ‘텔레그램 n번방’ 사건 관련자는 물론 언론에서 보도된 일반 성범죄 혐의자들의 신상도 공개되고 있다. 혐의자들의 사진과 함께 이름·나이·거주지·혐의 내용 등이 상세히 게재된다. 사진을 확보하지 못한 경우엔 운영자가 직접 “사진을 제보 받는다”는 게시글을 올리기도 했다. 지난달부터 활동을 시작한 이 계정의 구독자는 현재 6500여명에 이른다.

이러한 자의적 신상공개는 범죄로 처벌받을 가능성이 높다. 한 변호사는 “성범죄자라 하더라도 SNS를 통한 자의적 신상공개는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죄에 해당돼 형사처벌의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타인이 SNS 등 정보통신망을 활용해 신상정보를 공개할 경우 아동청소년성보호법 위반에 해당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자신을 ‘박아무개’라고 소개한 운영자는 불법 논란에 개의치 않는다는 태도다. 그는 “불법인 줄 알고 있다”면서도 “범죄자들에 대한 조롱을 목적으로 운영하는 계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법적인 정당성을 찾고자 모욕을 멈출 마음은 없다”며 “공익을 따지기보다 남은 인생 동안 피해를 보라고 올리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지인 2명과 함께 본업을 미루고 계정을 운영 중”이라며 “현재 남미 제3국에 숨어 있다”고 전했다.

운영자가 밝힌 SNS 계정 운영의 또 다른 목적은 성범죄자들의 처벌 강화다. ‘디지털살인죄’ 등을 신설해 진화된 성범죄를 강력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사진이나 영상이 유포되는 순간 피해자들은 지옥같은 삶을 살아간다”며 “디지털 살인죄를 만들어 살인이나 다름없는 범죄에 대해 강력한 처벌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곳에선 성범죄자에 대해 낮은 형량을 부과해 ‘솜방망이 처벌’ 논란이 일었던 판사들의 신상을 공개하며 비난하기도 한다. 박씨는 서울고등법원의 한 부장판사의 실명과 사진을 올리며 “성범죄 재판하실 때는 솜방망이 들고 다니는 데 다른 범죄들은 시원시원하게 철퇴 날리시는 판사님”이라고 적었다.

이용자들에겐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한 이용자는 “개인적으로 법의 테두리 밖에서 행해지는 재판을 선호하는 편이 아니지만 법이 정의로운가에 대해 고민했을 때 선뜻 그렇다고 답변할 수는 없었다”며 “젠더폭력 이슈가 있을 때마다 분노하면서도 행동으로 나서지 못해 죄책감이 있었는데 남들이 선뜻 하지 못한 것을 용감하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전문가들은 자의적 신상공개에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 한 관계자는 “가해자들을 처벌하고 경고한다는 취지는 있겠지만 신상공개가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을지는 고민해봐야 한다”며 “구조적인 성범죄를 개인의 범죄로 국한시킬 수 있어 단순하게 판단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정우진 기자 uz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