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석 ‘손잡다’ 대표
“사랑하고 대화하고 싶어, 장애가 삶에 방해 안 되길”
시청각장애인 자조 단체 ‘손잡다’의 조원석 대표는 “한국 사회는 헬렌 켈러와 설리번은 알지만 데프블라인드는 모른다”며 “우리처럼 시각과 청각 모두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시력을 잃고 왼쪽 청력만 조금 남아 있는 조 대표는 취재팀이 노트북에 입력하거나 메신저로 보낸 질문을 점자정보단말기로 번역해 읽고 음성 또는 메시지로 답했다.
조 대표는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은 각자의 협회를 통해 목소리를 내는데 시청각장애인은 그런 통로가 없다”며 “정부와 사회에 우리의 주장을 전달할 법정 단체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그가 이끄는 손잡다는 시청각장애인 15명과 이들을 돕는 ‘설리번’ 회원 10명으로 구성된 임의 단체다. 조 대표는 “시각 기반이든 청각 기반이든 장애 유형·정도와 상관없이 당사자라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조 대표는 데프블라인드에게 가장 절실한 것으로 교육을 꼽았다. 그는 “26년 전 중입 검정고시를 통과하고도 장애인 시설에 방치된 이관주씨 사례(국민일보 6월 3일자 보도 참고)에서 알 수 있듯 시청각장애인들은 교육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며 “제2의 관주씨가 더 이상 나와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조 대표는 “시청각장애인 지원을 전담하는 헬렌켈러 센터를 설치해 나이와 발달단계별로 맞춤형 교육을 해야 한다. 통역 및 활동 지원도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조 대표는 “눈앞이 안 보이고 소리를 들을 수 없어도 먹고, 자고, 사랑하고, 대화하고 싶은 욕구가 당연히 있다”며 “시청각장애가 우리의 삶에 방해가 되지 않는 날이 오기를 꿈꾼다”고 했다.
이명수 미래통합당 의원
“데프블라인드 소통 돕는 헬렌켈러법, 이달 내 발의하겠다”
이명수 미래통합당 의원은 지난해 2월 시청각장애인 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안(일명 헬렌켈러법)을 발의했다. 시청각장애를 별도 장애로 규정하고 지원센터를 설치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 법안은 그러나 제정에 이르지 못하고 20대 국회 종료로 폐기됐다.
21대 국회에서 4선 의원으로 활동하게 된 이 의원은 11일 취재팀과의 인터뷰에서 “이달 안에 헬렌켈러법을 다시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국민일보의 ‘대한민국 데프블라인드 리포트’ 보도로 시청각장애인의 힘든 현실이 구체적으로 드러났다”며 “의사소통이 어려운 시청각장애인은 시각장애인이나 청각장애인과는 필요한 복지·의료 서비스가 다르므로 별도 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시청각장애는 단순히 시각과 청각장애의 덧셈 개념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유형의 어려움이 나타나는 곱셈 개념”이라며 “알려진 규모가 수천명이라고 하지만 실태조사를 하면 더 늘어날 수도 있고 한 명이라도 지원할 수 있으면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다시 발의하는 법안은 정부에 부담이 덜 가도록 할 생각이다. 이 의원은 “시청각장애인 지원센터를 전국에 다 둬야 한다는 조항을 완화해 일단 지원 업무가 법적 근거를 갖고 시작될 수 있도록 할 생각”이라면서 “그렇게 해서 하루라도 빨리 시청각장애인의 이동과 소통을 도와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20대 국회에서 정부가 지원 자체를 반대한 게 아니라 방법론상의 문제를 이야기한 것이므로 다시 설득해 추진하려 한다”며 “복지를 강화하는 것이므로 여당 의원들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20대 국회 논의 과정에서 다른 유형의 중복 장애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이 법안에 소극적이었다.
서해정 한국장애인개발원 연구위원
“일본에 비해 30년 늦어…언어·점자 교육 서둘러야”
일본은 해마다 전국의 시청각장애인이 한 자리에 모여 시청각장애인대회를 연다. 2017년 이 대회를 참관했던 서해정 한국장애인개발원 연구위원은 “일본에 비하면 (한국의 시청각장애 지원 정책이) 30년이나 늦었다는 게 너무 가슴 아팠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달 29일 취재팀과의 인터뷰에서 “3년 전 일본 대회에서 장애인 한 명마다 조력자가 서너 명씩 지원되는 모습을 봤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이라고 말했다. 수어를 손으로 만지는 촉수화 통역은 체력 소모가 커 통역사가 교대로 일을 해야 하는데 일본은 그런 체계가 이미 갖춰졌다는 얘기다. 서 연구위원은 2017년 시청각장애인에 관한 국책기관의 최초 보고서인 ‘시청각중복장애인의 욕구 및 실태조사 연구’를 작성했다.
그는 일본 대회에서 데프블라인드들이 통역을 거치지 않고 서로 소통하는 모습에도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장애 발생 초기에 특수교육을 받았으므로 가능한 일”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또 “어떤 장애가 먼저 왔는지에 따라 소통방식이 다른 점을 고려해 이름표만 만져도 어떻게 소통할지 알 수 있도록 해 놨었다”고 말했다. 일본의 시청각장애인대회는 1991년 전국맹농인협회가 만들어지면서 시작돼 지난해까지 28차례 열렸다.
서 연구위원은 우리나라도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센터를 만들고 언어와 점자를 교육해 활동하도록 돕는 일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유전적 질환으로 장애가 나타나는 경우가 많으므로 영·유아 시기 조기 발견과 정확한 전문가의 판단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어 “센터는 장애인 당사자와 가족, 지원 인력을 함께 교육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며 “장애인 당사자가 대표가 돼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스스로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슈&탐사2팀 권기석 김유나 권중혁 방극렬 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