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전에 전염병 창궐에 코로나까지…예멘의 '눈물'

입력 2020-06-12 18:12
지난달 21일 예멘 남부에 위치한 항구도시 아덴의 라드완 공동묘지에서 무덤 파는 사람들이 시신을 묻고 있다. 아덴에서는 최근 코로나19 사망자가 급증해 수십 개의 새로운 묘지가 생겼다. AP연합뉴스

“한 남자가 곧 떼로 몰려들 시신에 대비해 동이 트자마자 무덤을 파기 시작한다. 하얀색 방호복을 입은 두 남성이 트럭 위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들은 시체를 급히 구멍에 빠뜨리고 흙으로 덮는다.”

미국 CNN방송이 12일(현지시간) 전한 예멘 남부 항구도시 아덴의 현실이다. 아덴만에 둘러싸인 인구 3000만명의 나라 예멘은 6년째 계속된 내전과 말라리아·뎅기열·콜레라 동시 창궐로 이미 피폐해진 상황에서 코로나19 확산의 직격탄을 맞았다. 맹렬한 더위와 질식할 것 같은 습도의 아덴에선 최근 갑작스러운 장례와 무덤 파는 일이 끝없이 반복되고 있다.

지난달 21일 예멘 남부 항구도시 아덴의 라드완 묘지에서 사람들이 무덤을 파고 있다. 아덴에서는 최근 코로나19 사망자가 급증해 수십 개의 새로운 묘지가 생겼다. AP연합뉴스

CNN에 따르면 아덴 지역의 사망자 수는 올해 들어 치솟았다. 보건부 보고서를 보면 지난달 첫 2주 동안 사망한 사람은 950명으로 집계됐다. 지난 3월 사망한 251명보다 4배 가까이 많다. 950명이라는 숫자는 예멘에서 내전이 한창이던 2015년 전체 사상자의 절반에 달하는 규모다.

2017년 8월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한 공습으로 파괴된 집의 잔해 위에 소년들이 서 있다. 예멘은 2014년 이란이 지원하는 후티 반군이 압드라부 만수르 하디 대통령의 정부를 수도 사나에서 몰아내고 북부 지역을 점령한 이후 내전이 계속되고 있다. AP연합뉴스

예멘은 2014년 이란이 지원하는 후티 반군이 압드라부 만수르 하디 대통령의 정부를 수도 사나에서 몰아내고 북부 지역을 점령한 이후 내전이 이어지고 있다.

통계사이트 월드오미터에 따르면 예멘의 코로나19 확진자는 591명, 사망자는 136명이다. 그러나 진단 검사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음을 고려하면 실제 감염자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예멘의 코로나19 치명률은 22%로 전 세계 평균인 6%를 크게 웃돈다.

예멘의 코로나19 사망자 현황. 통계사이트 '월드오미터' 홈페이지 캡처.

예멘에선 이미 10만명 이상의 콜레라 환자가 발생했다. 하지만 대다수 병원이 문을 닫아 제때 치료받기 어려운 실정이다. 인구 80만명인 아덴에 있는 코로나19 전용 병상은 60개 뿐이다. 이들 병상은 국경없는의사회(MSF)가 운영하는 병원에 있다.

지난달 코로나19에 감염된 가족을 떠나보낸 안와르 모트레프는 CNN에 “매일 아침 우리는 10~15명의 사망 소식을 들으며 일어난다”며 “이 모든 것은 누구의 탓인가. 우리는 이 생활에 지쳤다”고 토로했다.

MSF는 지난달 21일 발표한 성명에서 “우리는 지금 아덴에서 대참사의 서막을 목격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최근 “국제사회의 원조가 없으면 예멘을 지원하는 유엔의 주요 사업들이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며 도움을 호소했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