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불법적 경영권 승계의혹 수사가 결국 외부 인사들 앞에서 기소 타당성을 평가받게 됐다. 이번 수사심의위는 국내 1위 기업 총수에 대한 수사 면면을 평가하는 데다 삼성 수사에 대한 찬반 여론이 비등한 상황에서 벌어져 앞선 사례들보다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법조계의 관심은 만일 수사심의위에서 불기소가 타당하다는 의견이 모아질 경우에 쏠리고 있다.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까지 청구했던 검찰은 사실상 기소 방침인데, 처음으로 수사심의위의 의견을 묵살할 것인지 주목하는 것이다.
법조계는 수사심의위 위원장인 양창수 전 대법관을 향해서도 관심을 보인다. 민법의 최고 권위자이자 법조계의 어른 격인 양 전 대법관이 이 부회장 수사에 대해 취할 태도가 궁금하다는 기류다. 양 전 대법관이 대법관 재직 시절 삼성그룹의 ‘에버랜드 전환사채(CB) 헐값 발행’ 사건과 관련해 무죄 취지의 다수의견을 제시했었다는 점도 회자된다. 검찰은 이 부회장의 불법적 ‘승계작업’은 결국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문제이며 그 연원은 에버랜드 CB,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의 헐값 발행과 닿아 있다고 봐 왔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13일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부장검사 이복현)의 이 부회장 수사와 관련해 검찰 수사심의위원회를 소집하기로 했다. 이는 전날 서울중앙지검 부의심의위원회가 “사안의 중대성, 국민적 관심을 고려해 검찰 수사심의위에서 기소 여부를 따져볼 만하다”고 의견을 모은 데 따른 것이다. 검찰은 과거 기업가치 조작을 동반해 벌어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제일모직 핵심 자회사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등이 이 부회장의 지배력 강화를 위한 일이었다고 보고 수사를 진행해 왔다. 이 부회장에 대해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 등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최근 기각됐었다.
윤 총장이 소집을 결정한 이번 수사심의위는 이 부회장 공소 제기에 타당성을 살펴보기 위한 것으로서, 수사 지속 및 기소 여부 등을 다루는 ‘현안위원회’로 진행된다. 법조계, 언론계, 학계 등 전문가 150명~250명으로 구성된 수사심의위원 중 15인이 직역별 추첨 방식으로 선발돼 현안위원회를 구성하게 된다. 위원 면면은 주부, 교사, 회사원, 의사, 대학원생, 자영업, 퇴직공무원 등으로 다양했던 앞선 부의위원회 위원들과 다소 차이를 보인다. 수사심의위 제도 설립에 관여한 한 법조계 관계자는 “법률을 이해하고 전문적 식견을 가진 이들로 구성된다”고 했다.
수사심의위가 정확히 언제 개최될 것인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다만 이달 중으로 이 부회장의 기소 타당성 여부를 논의하는 장이 마련될 것으로 전망된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심의위원 등을 추첨한 뒤 이들과 일정을 조율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면서도 “통상 2~4주 내 회의가 열렸다”고 말했다.
수사심의위 참석 경험이 있는 인사들의 말을 종합하면 수사심의위는 법원에서의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과 엇비슷한 형태로 진행된다. 의견서만으로 판단을 구했던 부의위와 달리 수사심의위에서는 신청인 측과 상대방 측이 심의위원들 앞에서 적극적으로 설명을 하는 시간이 있다. 양측은 파워포인트(PPT) 자료를 활용해 가며 입장을 설명하기도 한다. 양측의 발언 시간은 30분가량으로 제한되지만 서로의 요구에 따라 더 긴 시간을 쓴 전례도 있었다고 한다.
재판장이 직접 신문을 하는 것처럼 심의위원들이 질의를 하기도 한다. 질의응답 과정에서 격론이 벌어지고 낯을 붉히게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규정상 신청인인 이 부회장 본인이 참석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 경우 이 부회장이 심의위원들 앞에서 직접 답변을 할 것인지도 관심이다. 양측은 심의위원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서로 상대측의 퇴실을 요구할 수도 있다.
심의위원들은 양측의 의견을 들은 뒤 상호 토론에 돌입한다. 이 과정은 비공개로 진행된다. 토론 결과 일치된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 권장되지만, 의견이 좁혀지지 않을 경우 15명은 표결을 하게 된다. 법조계는 결국 15명이 이 부회장의 기소 의견과 불기소 의견으로 갈려 표결을 할 것으로 본다. 이 표결이 이 부회장의 기소 여부를 완전히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불기소 의견이 나올 경우가 흥미롭다는 게 법조계의 관측이다. “외부 심의위원들이 단시간에 평가할 수 있겠느냐”는 시각도 있고, “단 15명을 설득하지 못한다면 법정에 세우는 건 재고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수사심의위 회의 진행은 위원장인 양 전 대법관이 맡는다. 양 전 대법관은 심의위원끼리의 토론을 주도할 것으로 관측된다. 양 전 대법관의 존재만으로도 이번 수사심의위가 허수아비 격은 아닐 것이라는 게 법조계의 설명이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경험이 있는 양 전 대법관에게는 수사심의위 토론 정도는 쉽게 주도할 것”이라며 “검찰 입장에서도 부담스럽긴 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 전 대법관이 과연 이번 수사심의위를 맡아 진행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도 있다. 그가 과거 대법관 재직 시절 삼성에버랜드 CB 헐값 발행 사건에서 무죄 취지의 다수의견 쪽에 섰었다는 얘기다. 검찰 구성원들은 양 전 대법관의 이 같은 이력에 대해 말을 아꼈다. 그는 2008년 9월 대법관 인사청문회 당시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 사건의 하급심 무죄 판결에 대해 질문을 받곤 “삼성 사건이 매우 중요한 사건이라는 것을 스스로도 인식한다”고 했었다. “경제 발전의 기여라고 하는 것이 법원이 고려한 여러 가지 사유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한다”고도 언급했다.
허경구 기자 ni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