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이른바 ‘성경 이벤트’에 동행했던 마크 밀리 합참의장이 실수를 인정하고 공개 사과했다. 밀리 의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시위 진압에 연방군을 투입하겠다고 경고한 날 전투복 차림으로 대통령을 수행해 강경 대응을 주도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군 내부에 누적됐던 반(反)트럼프 기류가 시위 대응을 거치면서 하나둘 터져나오는 분위기다.
CNN에 따르면 밀리 의장은 11일(현지시간) 공개된 사전녹화 영상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주 백악관에서 세인트존스 교회까지 걸어갈 때 동행한 것을 후회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곳에 가지 말았어야 했다”며 “그 순간 나의 존재는 국내 정치에 관여하는 군에 대한 자각을 불러일으켰다”고 말했다. 밀리 의장은 “그것은 실수였고 우리 모두 그 실수에서 배울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 영상은 국방대 졸업식에서 상영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일 백악관 인근에 있는 세인트존스 교회를 방문해 한 손에 성경을 들고 취재진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폭력 시위 진압에 연방군을 투입할 수 있다는 기자회견을 한 직후 이뤄진 포토타임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을 나와 교회까지 걸어서 이동할 때 밀리 의장과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이 동행했다.
당시 경찰과 주방위군은 대통령 행사 직전 백악관 인근 라파예트 공원에서 평화 시위를 벌이던 시민들을 향해 최루탄을 발사해 해산시켰다. 이런 자리에 군 ‘투톱’이 등장한 건 군이 강경 시위 진압을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됐다. 이날 밤 워싱턴DC 상공에는 헬리콥터가 떠 시위대를 감시했다.
이후 에스퍼 장관은 기자회견을 자청해 트럼프 대통령의 군 동원 방침에 반대 의사를 밝혔다. 제임스 매티스 전 국방장관과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도 줄줄이 트럼프 대통령 비판에 가세했다. 이어 밀리 의장까지 참회 메시지를 낸 것이다.
CNN은 “미국의 최고위 장군이 미래의 군 지도자들 앞에서 최고사령관을 수행한 데 대해 사과한 희대의 순간”이라고 평가했다.
밀리 의장은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에서 촉발된 인종차별 반대 시위를 지지한다는 뜻도 분명히 밝혔다. 그는 “나는 플로이드가 무자비하고 잔인하게 살해된 데 격분한다”며 “한동안 이어진 시위는 그의 죽음뿐 아니라 수 세기 동안 계속된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대한 불의를 대변한다”고 말했다. 이어 “대부분의 시위가 평화적이었다는 데 우리 모두 자랑스러워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일련의 사건에서 드러나듯 트럼프 대통령과 군 사이 갈등은 위험 수위에 다다른 상태다. 군 내부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인종차별 시위 대응에 정치적으로 군을 끌어들인 데 불만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통신은 이날 에스퍼 장관이 시위 현장에 투입됐던 주방위군의 대응이 적절했는지 검토할 것을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미 국방부는 성명을 내 “주방위군의 무장, 조직, 운용, 배치를 포함한 모든 사안을 다룰 것”이라고 밝혔다. 시위가 한창이던 이달 초 미 전역에서 약 7만4000명의 주방위군이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