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지 말았어야 했다”…美합참의장의 반성문

입력 2020-06-12 13:30 수정 2020-06-12 16:04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일(현지시간) 백악관 기자회견을 마치고 세인트존스 교회로 이동하는 모습. 트럼프 대통령 오른쪽에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과 마크 밀리 합참의장이 함께 걷고 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이른바 ‘성경 이벤트’에 동행했던 마크 밀리 합참의장이 실수를 인정하고 공개 사과했다. 밀리 의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시위 진압에 연방군을 투입하겠다고 경고한 날 전투복 차림으로 대통령을 수행해 강경 대응을 주도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군 내부에 누적됐던 반(反)트럼프 기류가 시위 대응을 거치면서 하나둘 터져나오는 분위기다.

CNN에 따르면 밀리 의장은 11일(현지시간) 공개된 사전녹화 영상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주 백악관에서 세인트존스 교회까지 걸어갈 때 동행한 것을 후회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곳에 가지 말았어야 했다”며 “그 순간 나의 존재는 국내 정치에 관여하는 군에 대한 자각을 불러일으켰다”고 말했다. 밀리 의장은 “그것은 실수였고 우리 모두 그 실수에서 배울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 영상은 국방대 졸업식에서 상영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밖으로 걸어나와 인근 세인트존스 교회 앞에서 성경을 들고 서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인종차별 반대 시위 진압에 연방군을 투입할 수 있다고 밝혔다. 로이터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일 백악관 인근에 있는 세인트존스 교회를 방문해 한 손에 성경을 들고 취재진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폭력 시위 진압에 연방군을 투입할 수 있다는 기자회견을 한 직후 이뤄진 포토타임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을 나와 교회까지 걸어서 이동할 때 밀리 의장과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이 동행했다.

당시 경찰과 주방위군은 대통령 행사 직전 백악관 인근 라파예트 공원에서 평화 시위를 벌이던 시민들을 향해 최루탄을 발사해 해산시켰다. 이런 자리에 군 ‘투톱’이 등장한 건 군이 강경 시위 진압을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됐다. 이날 밤 워싱턴DC 상공에는 헬리콥터가 떠 시위대를 감시했다.

이후 에스퍼 장관은 기자회견을 자청해 트럼프 대통령의 군 동원 방침에 반대 의사를 밝혔다. 제임스 매티스 전 국방장관과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도 줄줄이 트럼프 대통령 비판에 가세했다. 이어 밀리 의장까지 참회 메시지를 낸 것이다.

CNN은 “미국의 최고위 장군이 미래의 군 지도자들 앞에서 최고사령관을 수행한 데 대해 사과한 희대의 순간”이라고 평가했다.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지난 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앞을 가득 메운 모습. AP연합뉴스

밀리 의장은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에서 촉발된 인종차별 반대 시위를 지지한다는 뜻도 분명히 밝혔다. 그는 “나는 플로이드가 무자비하고 잔인하게 살해된 데 격분한다”며 “한동안 이어진 시위는 그의 죽음뿐 아니라 수 세기 동안 계속된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대한 불의를 대변한다”고 말했다. 이어 “대부분의 시위가 평화적이었다는 데 우리 모두 자랑스러워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일련의 사건에서 드러나듯 트럼프 대통령과 군 사이 갈등은 위험 수위에 다다른 상태다. 군 내부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인종차별 시위 대응에 정치적으로 군을 끌어들인 데 불만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통신은 이날 에스퍼 장관이 시위 현장에 투입됐던 주방위군의 대응이 적절했는지 검토할 것을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미 국방부는 성명을 내 “주방위군의 무장, 조직, 운용, 배치를 포함한 모든 사안을 다룰 것”이라고 밝혔다. 시위가 한창이던 이달 초 미 전역에서 약 7만4000명의 주방위군이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