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비판적인 벽화로 유명한 ‘얼굴 없는 작가’ 뱅크시(Banksy)가 바타클랑 극장 비상구 문에 그린 작품이 지난해 파리에서 도난당한지 1년 5개월 만에 이탈리아의 한 농가에서 발견됐다.
11일(현지시간) 이탈리아 현지 언론에 따르면 발견 당시 문은 한쪽 벽에 기댄 채 놓여 있었고 그림 상태는 양호했다. 이 농가는 다른 지역에 거주하는 이탈리아인 소유지만, 현재는 한 중국인 가족에게 임대돼 있는 상태다. 농가에 거주하는 이 중국인 가족은 해당 그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느 정도 가치가 있는지 전혀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고 현지 경찰은 전했다.
해당 그림은 뱅크시가 2018년 1월 프랑스 파리에서 선보인 작품으로, 2015년 11월 프랑스에서 발생한 테러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고자 그린 작품이다. 고개를 숙인 채 슬픔에 잠긴 여성을 형상화했다.
당시 파리와 교외 지역 6곳에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저지른 총격·폭탄 테러로 130명이 숨졌는데, 특히 미국 록밴드가 콘서트 중이던 파리 바타클랑 극장에서 가장 많은 90명의 희생자가 나왔다. 뱅크시는 이런 배경에서 바타클랑 극장 비상구 문을 활용해 해당 그림을 그렸다. 그런데 지난해 1월 25일 밤, 이 문이 통째로 사라져 버렸다.
당시 경찰은 여러 명의 일당이 앵글 그라인더 등의 공구를 이용해 문짝을 떼어간 것으로 보고 그 행방을 추적했으나 끝내 찾지 못했다. 그로부터 1년 5개월여가 흐른 지난 10일(현지시간) 이탈리아 중부 아브루초주 라퀼라에 있는 한 작은 농가의 지붕 아래 다락에서 뱅크시 그림이 담긴 문이 발견된 것이다.
이탈리아 경찰은 “프랑스 경찰과의 합동 수사를 통해 그림 소재를 확인했다”고 밝혔으나 구체적인 경위는 공개하지 않았다. 이 문이 어떻게 국경을 넘게 됐는지도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경찰은 그림 절도에 관여한 것으로 의심되는 인물을 계속 추적하고 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넘나들며 활동하는 범죄단체가 수사선상에 올라있다.
그림은 조만간 원래 있던 장소인 바타클랑 극장으로 돌아갈 것으로 알려졌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