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 “이용수 할머니 목소리 피한 文, 이게 철학 빈곤”

입력 2020-06-12 06:55
문재인 대통령(왼쪽 사진)과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뉴시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문재인 대통령의 지난 8일 정의기억연대(정의연)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관련 발언을 놓고 “대통령 발언이 ‘우리 편 지키기’ 프레임에 머물러 있다”고 비판했다.

진 전 교수는 11일 오후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한 달 만에 나온 대통령 발언이라면 최소한 이 부분이 들어갔어야 한다. ‘아이 캔 스피크(I can speak)’. 이용수님이 내는 목소리에 정면으로 응답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진 전 교수가 언급한 ‘아이 캔 스피크’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를 소재로 한 영화로, 극 중 배우 나문희가 연기한 주인공 나옥분 역이 실제 이용수 할머니를 모델로 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는 나옥분 할머니가 위안부 피해 사실을 세계에 알리며 여성인권 운동가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린다.

앞서 지난 8일 문 대통령은 정의기억연대(정의연)를 둘러싼 일련의 논란에 대해 “위안부 운동의 대의는 굳건히 지켜져야 한다”면서 “특히 이용수 할머니는 위안부 운동의 역사이다. 위안부 문제를 세계적 문제로 만드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하셨다”고 언급했다.

진 전 교수는 “운동권 목소리가 정작 현실에 존재하는 할머니들의 진짜 목소리를 가려 버렸다. 정작 이용수님이 던진 메시지는 슬쩍 뭉개 버리고 그냥 ‘회계실수’ 정도로 퉁치고 넘어가려 한다”며 “즉 대통령의 발언이 ‘우리 편 지키기’ 프레임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철학의 빈곤’이란 이런 것을 가리킨다”면서 “노무현 대통령이라면, 피해 가지 않고 저 메시지를 정면으로 받았을 것이다. 참모라는 사람들이 굳이 이런 것까지 일일이 설명해 줘야 알아듣나. 아니, 이렇게 설명해 주면 알아는 듣나”라고 덧붙였다.

앞서 진 전 교수는 전날 국민의당 주최 강연에서 “(문 대통령이) 남이 써준 연설문을 그냥 읽는 거고 탁현민(청와대 의전비서관)이 해준 이벤트를 연출하는 의전 대통령이라는 느낌이 든다, 자기 의견이 없다”고 말했다. 이 발언을 놓고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을 지낸 윤영찬 민주당 의원을 비롯한 청와대 전·현직 참모들의 반발이 이어졌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