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준모 “브로드웨이 42번가, 꼭 내 얘기 같았죠”[인터뷰]

입력 2020-06-12 05:00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에서 줄리안 마쉬 역을 맡은 배우 양준모. 샘컴퍼니 제공

미국 뉴욕의 브로드웨이는 문을 닫았지만, 한국의 ‘브로드웨이 42번가’는 성황이다. 성악가이자 뮤지컬 배우 양준모는 이번 공연으로 특별한 도전을 시작한다. 독보적 발성으로 관객을 압도해 온 그는 뮤지컬 ‘영웅’ ‘레미제라블’ ‘명성황후’처럼 묵직한 메시지를 담은 극의 중심을 잡아 왔지만 무대에 선 지 17년이 된 지금,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와 만나 연기 변신을 시도한다. 무대 위 화려한 조명과 경쾌한 음악, 발랄한 탭댄스와 양준모가 연기하는 줄리안 마쉬가 어우러지는 ‘브로드웨이 42번가’는 어떤 모습일까.

최근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만난 양준모는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의 연출가 줄리안은 나와 많이 닮았다”며 “난 뮤지컬 배우이기도 하지만 줄리안처럼 연출가이기도 하다. 잘하는 후배가 있으면 어떻게든 성장하도록 도와주고 싶다”고 말했다.

‘브로드웨이 42번가’는 시골 출신 페기 소여의 성장기를 그린다. 1930년대 미국 대공황 시기 뉴욕을 배경으로 하는데, 한때 브로드웨이 최고의 연출가로 이름을 날렸던 줄리안은 불황에 빠진 공연계에서 ‘프리티 레이디’라는 작품으로 재기를 꿈꾼다. 페기는 줄리안이 개최하는 오디션을 보고 싶었지만 두려움에 사로잡혀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했다. 결국 오디션을 보지 못한 페기. 그는 어떻게 브로드웨이의 스타가 될 수 있었을까.

양준모가 연기하는 줄리안은 페기의 재능을 단박에 알아채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도록 돕는다. 냉철하고 정확하면서도, 한없이 인간적인 모습은 양준모와 똑 닮아있다. 그는 현재 ‘시어터 보이스 스터디’라는 레슨 프로그램을 통해 후배들을 만나고 있다. “잘하는 후배가 있으면 못 참는 것 같아요.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거든요. 제게 음악을 배우고 싶다는 후배들이 점점 많아져서 아예 스터디를 꾸렸어요. 40~50명 정도 참여하는데, 매회 특별 게스트를 초청해 연기도 가르치고, 노래도 알려주죠.”

앞서 양준모는 오페라 ‘리타’의 연출을 맡았었다. 줄리안의 역할에 누구보다 자신 있는 이유이면서 ‘브로드웨이 42번가’의 매력을 더 깊게 느낄 수 있던 이유다. 그는 도로시 브룩을 캐스팅할 수밖에 없던 상황에 공감했고, 페기가 앙상블에서 스타가 되는 과정에 필요한 여러 조력을 이해했다. 특히 줄리안이 페기에게 초심을 잃지 않도록 당부하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연출가는 단순히 공연을 훌륭하게 해내는 것 외에도 배우의 성장과 마음가짐까지 다 잡아주는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그는 생각한다.

양준모의 역사를 아는 팬들은 그가 줄리안을 연기한다고 했을 때 고개를 갸우뚱했다. 넘버가 한 곡밖에 없기도 하고 안중근, 고종황제 등 지금까지 양준모가 맡았던 역할과는 거리가 있었다. “올해로 무대에 선 지 17년이 됐어요. 한 분야에서 17년을 일하는 건 쉽지 않은 기회라 감사한 마음뿐이죠. 다만 전환점이 필요했어요. 지금까지 맡은 역할은 양준모라는 배우를 쉽게 떠올릴 수 있었어요. 계속 비슷한 역할을 해왔다는 의미죠. 안주해서는 안 될 것 같았어요.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으려고 해요. ‘브로드웨이 42번가’도 그런 맥락의 도전이죠.”

실제로 양준모는 지금까지 ‘브로드웨이 42번가’를 한 번도 본 적 없다. 관심 있는 장르가 아니었고, 출연할 거라는 생각은 더더욱 하지 못했다. 그는 “그냥 쇼뮤지컬이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며 “하지만 대본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극이 주는 메시지가 굉장히 깊이 있다. ‘지금까지 이걸 왜 안 봤지’ 후회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자신만의 줄리안 캐릭터를 새롭게 설정했다. 대본에는 ‘연출가’라고 나오지만 그는 ‘노래로 날렸던 배우 출신의 연출가’라는 캐릭터로 설정했다. “마지막 장면에서 빈 무대를 바라보는 줄리안의 감정을 알 것만 같아요. 지금까지 자신이 서 왔던 무대라 감회가 남다르면서도 쓸쓸했을 거고, 연출가로서는 공연을 올리기까지 겪었던 무수한 고난이 떠올라 뭉클했다가도 폐막의 감동과 전율을 느끼지 않았을까요.”

‘브로드웨이 42번가’는 뉴욕 대공황 시대를 배경으로 한 만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침체한 지금의 사회와도 많이 닮았다. 양준모는 “사회적인 어려움으로 공연장이 문을 닫은 상황에서 줄리안은 재기를 위해 온 힘을 다한다”며 “배우, 스태프, 공연 관계자 모두 힘든 시국에 공연 하나를 무대에 올리기 위해 얼마나 처절히 애쓰는지 공연을 통해 관객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