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5G 양자보안칩…이통사·강소기업 함께 만들었다

입력 2020-06-11 16:31

“혼자서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 기업은 없습니다. 모든 기업은 공존해야 한다는 걸 느꼈습니다”

세계 첫 5G 양자보안 스마트폰 ‘갤럭시A 퀀텀’에는 눈곱만한 크기의 양자난수생성(QRNG) 칩셋(사진)이 탑재됐다. 양자보안은 기존 보안 체계를 위협하는 양자컴퓨터가 등장하면서 이를 방어하는 수단으로 그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 기술의 상용화를 가능케 한 반도체 칩셋을 국내 강소기업이 만들어냈다.

주인공 ‘비트리’는 2014년부터 반도체 칩셋을 설계해 제조사에 공급하는 팹리스 업체다. 양자기반의 모바일 제품화를 이뤄낸 비트리의 도전은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양자난수생성 칩셋을 상용화하기 위해 반도체 설계 기업이 절실했던 SK텔레콤은 이 분야 시장이 크지 않았다는 이유로 업체들로부터 수차례 거절 의사를 전달받았다. 이후 기술을 가진 중소업체로 눈을 돌린 SK텔레콤의 시야에 비트리가 포착됐다. 비트리는 고민 끝에 SK텔레콤, IDQ와 손잡고 미래 양자 기술을 개발하는데 협력하기로 했다.

11일 경기 성남 분당 비트리 본사에서 만난 김희걸 CTO(최고기술경영자)는 “구글처럼 혁신 제품을 갈망하던 비트리와 QRNG 제품 양산을 원하던 SK텔레콤의 요구가 잘 맞았다”고 회상했다. 상용화 과정에는 무수한 실패가 있었다. 제품이 고온을 이기지 못해 녹거나, 난수를 생성하는 빛이 새는 현상도 발생했다. 김 CTO는 “이대로는 상용화가 불가능겠다는 결론을 내릴 때쯤 제품을 ‘메탈 패키지’로 전환, 샘플을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김희걸 비트리 CTO(최고기술경영자). SK텔레콤 제공


비트리는 2018년 상용화한 IoT·자율주행용 칩셋보다 더 작은 크기의 모바일용 제품을 개발해야만 했다. 당시 SK텔레콤-삼성전자 경영진이 QRNG 칩셋을 스마트폰에 탑재하는데 뜻을 모으면서 사업에는 탄력이 붙었다. ‘세계 최초 모바일용 칩셋 상용화’를 위해 SK텔레콤-삼성전자-비트리는 높은 품질기준을 통과하기 위해 테스트를 거듭했다.

정밀 부품이 밀집한 QRNG 칩셋은 2016년 USB 형태에서 현재의 초소형(2.5x2.5x0.8㎜) 칩셋으로 진화했다. 더 작게, 더 얇게 만들기 위한 시도는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작은 칩셋 안에서 LED 광원부가 방출한 빛을 이미지센서가 전기 신호로 변환한다. 매번 전달되는 빛 알갱이의 양이 달라 결과물 예측이 불가능하다. 이렇게 탄생한 ‘순수 난수’ 역시 해킹이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이 테스트만 6개월간 100만번 진행됐다.

SK텔레콤은 양자보안 기술이 꾸준히 쓰임새를 넓혀갈 것으로 보고 있다. 글로벌 스마트폰 제조사에 QRNG 칩셋을 공급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아직 초기 시장인 양자보안 기술의 생태계 확장을 위해 오픈 API를 공유하고, 스마트폰에서 적용이 가능한 서비스도 확대해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소형화를 거듭하고 있는 비트리 QRNG 칩셋. SK텔레콤 제공

김성훈 기자 hun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