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이 마주한 서울 반포대로 8차로를 가운데 두고 윤석열 검찰총장 사퇴·응원을 각각 부르짖는 맞불 집회가 13일째 이어지고 있다. 대검 정문 앞에 빨간색과 초록색 천막을 설치해 플래카드와 앰프를 보관하는 양측은 해질녘이 되면 한쪽이 건너가 발언을 시작한다. 현재 진행 중인 검찰 수사의 정당성이 주된 쟁점인데, 법원과 검찰을 드나드는 법조인들은 “청와대 앞에 있던 진영이 이제 서초동에서 격돌한다”고 말한다.
지난 10일 오후 4시쯤. 서울 서초구 대검 입구의 초록색 천막에서 ‘검찰총장사퇴 범국민응징본부’ 사람들이 나와 앰프를 들고 횡단보도를 통해 맞은편으로 건너갔다. 이들의 천막에는 “쿠데타 윤석열 검찰총장 사퇴”라는 플래카드가 달렸다. 초록색과 2m 간격을 두고 떨어진 빨간색 천막에서도 ‘자유연대’ 사람들이 나왔다. 이들의 천막에는 “윤석열 검찰은 우리가 지킨다”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양측은 곧 구호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서울중앙지검 쪽으로 건너간 이들이 “윤석열 사퇴하라”고 하자 대검 쪽에 남은 이들은 “문재인(대통령)보고 자르라 하라”고 맞받았다. 이들의 말싸움 주제는 조 전 장관의 가족비리 사건 수사는 물론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수사,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정의기억연대 후원금 유용 의혹까지 다양했다. 경찰은 소요 방지를 위해 40여명의 인력을 배치했다.
이들은 애초 반포대로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지 않고 대검 쪽에 모여 있었다. 먼저 설치된 천막은 초록색 천막이었다.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증인 출석을 반대한다”고 한 다음날이자 송철호 전 울산시장의 선대본부장 뇌물수수 구속영장이 기각된 지난달 29일이었다. 윤 총장 사퇴를 촉구하는 이들이 천막을 친다는 소식은 유튜브 방송으로 먼저 전해졌다. 이에 집회신고가 돼 있던 자유연대가 바로 옆에 빨간 천막을 세웠다.
처음에는 천막 안에서 구호를 외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흥분한 일부가 천막에서 나와 뒤엉키면서, 경찰은 한쪽이 길을 건너도록 중재했다. 분에 못 이긴 일부가 멱살을 잡고 욕설을 해 폭행 혐의로 경찰에 입건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었다. 지난 1일부터는 검찰총장사퇴 범국민응징본부가 길을 건너 서울중앙지검 서문 좌측에 자리를 잡았다. 경찰은 신고된 집회 도중 서로의 ‘진영’에서 한 명이라도 길을 건너려 하면 막아세웠다.
이들의 태도는 강고하지만 지난해 이맘때와 비교하면 정반대로 뒤집어진 것이기도 하다. 윤 총장 수호 기치를 내건 김상진 자유연대 사무총장은 지난해 5월 윤 총장의 자택 앞에서 협박성 인터넷 방송을 해 구속까지 됐던 이다. 맞은편 검찰총장사퇴 범국민응징본부를 이끄는 백은종 서울의소리 대표는 지난해 7월 윤 총장의 총장 인사청문회 당시 의혹을 제기했던 뉴스타파를 비난했었다.
둘이 옷을 갈아입은 계기는 결국 지난해 9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였다. 이 수사 이후 백 대표는 ‘서초동 집회’에 나와 “윤 총장이 문 대통령을 배신했다”고 발언했다. 김 사무총장은 윤 총장의 측근들이 지방으로 좌천된 뒤 “윤 총장 힘내라”는 1인 시위를 시작했다. 독립됐다는 검찰 주변에서 정치적 색채의 발언이 커지기 시작했고, 정치권의 주장도 양측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 검찰 간부는 “지난 4월 총선 국면에서 또 다른 주인공은 검찰이었다”고 했다.
이들의 공방에 서울 서초동 직장인과 주민들은 소음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서초동에 직장이 있다는 홍모(36)씨는 “너무 시끄러워서 지나다니기가 싫을 정도”라며 “표현의 자유가 있겠지만 때론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검과 대검 직원들은 “일에 집중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경찰에서 경비인력을 파견해 소요 사태에 대비하지만 시시때때로 ‘볼륨’이 커지는 것은 차단할 방법이 없다.
경찰은 종종 소음 측정을 하겠다며 양측을 진정시키곤 한다. 집시법 시행령은 ‘피해자’가 위치한 건물의 외벽에서 1~3.5m 떨어진 곳에서 소음을 측정하게 했다. 일출 후부터 일몰 전까지인 주간시간에 75데시벨(㏈)을 넘으면 확성기 사용을 제지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다만 대검 외벽에서 측정한 이들의 소음 최대치는 72㏈였다고 한다. 가까스로 허용된 소음은 윤 총장의 차량이 대검에서 빠져나갈 때 가장 높았다. 이들의 풍경을 잠시 지켜보던 한 시민은 “서로 경청하기보단 진영의 주장을 하기에 바쁘다는 인상”이라고 말했다.
허경구 기자 ni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