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 폭행, 극단적 선택…. 최근 아파트에서 일어난 몇몇 사건들이 대중의 공분을 샀습니다. 피해자는 경비원이었습니다. 자신들을 대신해 귀찮고 궂은일을 도맡아 해주는데도 일부 입주민들은 힘없는 이들을 괴롭혔습니다. 억울하고 아픈 사연을 꾹꾹 눌러 담아놓고는 결국 세상을 등지는 일까지 발생했습니다.
두 평 남짓한 경비실에서 땀 흘려 일하는 이들을 지켜줄 존재는 무엇일까요. 생각이 많아지는 찰나 감동적인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해고 위기에 처한 수십여명의 경비원을 지켜낸 서울 강북구 SK북한산시티 아파트 주민들의 이야기입니다.
11일 오후 아파트 동대표 임시회의가 열렸습니다. 경비업체 선정 안건을 재논의하기 위해 모인 겁니다. 기존 경비업체와의 계약 만료에 따라 경비 업체 선정 입찰공고안을 새로 정하면서 기존 87명의 경비원 수를 33명으로 줄이자는 입찰공고 안건이 지난달 입주자대표회의에서 통과됐습니다. 이날은 바로 이 건을 철회하자는 목소리를 내기 위해 마련된 자리지요.
경비원 54명의 일자리가 달린 순간. 결과는 참석자 26명 중 19명이 찬성. 인원 감축을 없던 일로 하고 기존 87명 체제를 유지하겠다는 거였습니다. 다만 향후 인원 증감을 논의할 수 있다는 내용이 덧붙여졌습니다. 그래도 이게 어딘가요. 당분간 가족 같던 경비원들을 계속 만날 수 있게 됐습니다.
일등공신은 입주민들의 노력이었습니다. 처음에 입주자 대표 측은 관리비 절감이라는 이유를 내세워 경비 인력을 줄이고 70대 위주인 경비원의 연령을 낮추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가 내놓은 방안이 시행되면 경비원 수는 대폭 줄고 기존 경비초소 43개가 사실상 용도를 잃으며 폐기되는 상황이었죠.
이럴 경우 주택법에 따라 입주자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고 관할 관청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입주자 대표 측은 기본적인 법률적 문제조차 검토하지 않고 입주자 동의 없이 경비 인력을 33명으로 줄이는 방안을 가결해버렸습니다. 이같은 사실을 안 입주민들은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절차를 지키지 않은 입주자 대표 측에 대한 분노도 있었지만, 특별한 이유 없이 내쫓기는 경비원들의 모습을 지켜볼 수만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입주민들은 대자보를 붙이는 등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습니다. 입주민들은 “경비원들이 나이가 많아 일을 못 한다고 하는데 나이 문제가 아니다”라며 “주민 의견을 듣고 동의를 구해야지 입주자 대표라고 해서 마음대로 해달라고 한 적 없다”며 분노했습니다.
사실 이 아파트 입주민들이 경비원의 해고를 막아낸 건 처음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2015년 있었던 경비원 감원 논의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고 입주민들은 직접 나섰습니다. 이들에게 경비원들의 존재는 어떤 의미일까요. 나의 공간을 지켜주고, 고된 일을 대신 해주고, 함께 더불어 살아간다는 걸 잘 알고 있을 겁니다. 한 입주민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경비원들은 봄이 오면 꽃잎 하나까지 쓸고 겨울에는 쏟아주는 눈을 치워주시는 감동적인 분들입니다.”
[아직 살만한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아살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문지연 기자 jy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