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상 간접경험 아냐” LoL 즐긴 병역거부자 무죄

입력 2020-06-11 10:38

종교적 병역거부를 선언한 여호와의 증인 신도에게 법원이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그가 팀 전투 게임의 일종인 ‘리그오브 레전드(LoL·롤)’를 즐겼다며 병역거부 신념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종교적 사유에 따른 병역거부자가 1인칭 총기 게임 등을 즐겼더라도 신념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취지의 판단을 계속 내리고 있다.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1-2부(부장판사 송혜영)는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황모(23)씨에게 원심과 같이 무죄를 선고했다. 황씨는 15세 때인 2013년 6월 부모님을 따라 여호와의 증인 신도로 인정을 받았다. 황씨는 2017년 11월까지 입영하라는 통지서를 전달받고도 입대일이 지나도록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하지 않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황씨의 재판 과정에서는 황씨가 종교적 병역거부를 하고도 롤 게임을 했던 사실이 한 쟁점이 됐다. 검찰은 지난 2018년 대법원이 ‘신념이 깊고 확고하며 진실한‘ 종교적 병역거부자를 형사처벌할 수 없다고 결론지은 데 따라 병역거부 사유의 진정성을 판단하는 지침을 일선에 내렸는데, 총기를 이용해 전투를 벌이는 게임 접속 여부를 확인하는 내용도 포함됐었다. 전쟁 관련 게임인 롤 서버에 접속한 황씨에게 집총 거부라는 신념이 인정되느냐는 게 검찰의 의문이었다.

하지만 재판부의 판단은 앞서 무죄를 선고한 1심과 다르지 않았다. 재판부는 “롤 게임 캐릭터들의 형상, 전투의 표현방법 등을 비춰볼 때 이는 타인에 대한 살상을 간접경험하게 한다고 볼 수 없다”며 검찰의 항소를 기각했다. 형이 같은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고 징역형을 복역했지만 황씨가 양심을 버리지 않았다는 점도 재판부의 판단에 참고됐다.

전쟁·살상 주제의 온라인 게임을 즐겼더라도 종교적 병역거부가 ‘진정한 양심’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판단은 유지되고 있다. 롤이 아닌 ‘1인칭 슈팅게임’을 접속한 종교적 병역거부자들에게도 무죄 선고가 이어지고 있다. 대법원은 2018년 11월 종교적 신념에 따른 입영거부도 병역법이 규정하는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며 형사처벌할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앞서서는 2018년 6월 헌법재판소가 대체복무를 정하지 않은 병역법 조항은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했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