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이 인턴이면 얼마나 좋을까

입력 2020-06-11 05:00

직장인이라면 한 번쯤 해봤을 상상. ‘꼰대’ 부장이 인턴으로 입사한다면? 아들 학교 숙제까지 시키던, 업적은 가로채고 질책은 몰아주던 악덕 상사라면? MBC 수목극 ‘꼰대인턴’의 역발상이 특별한 이유는 기존의 직장인 드라마와는 다른 문제를 짚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직장 내 노동을 다뤘던 작품은 대부분 고용실태나 부당해고, 노동착취가 만연한 구조적 문제에 집중했다. 그 안에 괴롭힘은 늘 존재했지만 부수적이고 도덕적인 문제로 여겨졌다. 상사의 뾰족한 말을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건 미덕으로 여겨졌고 시간 외 업무지시를 제때 해내는 건 열정으로 평가됐다.

‘꼰대인턴’은 구조나 체계보다 인간과 인간 사이 괴롭힘 영역에 집중했다. 90년생이 사회로 들어온 지금 ‘꼰대’라는 말이 유행할 만큼 권위를 내려놓은 수평적 조직문화가 제안됐고 지난해에는 근로기준법이 개정돼 직장 내 괴롭힘도 처벌할 수 있게 됐다. ‘꼰대인턴’은 시대적 요구를 여실히 반영한 셈이다. 그래서인지 모든 직장인의 대리만족을 발판 삼아 줄곧 수목극 시청률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야기는 가열찬(박해진)의 말단 인턴 시절부터 시작한다. 대학 졸업 후 이른 나이에 국내 굴지 식품 대기업 ‘옹골식품’ 인턴 취업에 성공했지만 부장 이만식(김응수)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커피 심부름 등 허드렛일만 가열찬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열찬은 늘 회사 업무에서는 배제됐고 주로 이만식의 집안일을 맡았다. 상사 아들의 학교 숙제가 왜 인턴의 몫이어야 하나.

회사 내 이만식의 입지는 탄탄했다. 대표 상품인 ‘옹라면’을 성공적으로 론칭한 그다. 이만식은 업무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훌륭한 어른은 아니었다. 소머리국밥집 비법을 훔쳤다는 이유로 소송이 진행됐고 가열찬이 국밥집 사장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고 보고까지 했지만 무시했다. 결국 사장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책임을 묻는 징계위원회가 열렸지만 이만식은 자신의 살 궁리 찾기에 여념 없었고 모든 책임을 가열찬에게 물었다.


가열찬은 ‘옹골식품’에서 퇴사해 경쟁사 ‘준수식품’ 정규직으로 입사했다. 그가 론칭한 ‘핫닭면’은 흥행에 성공했고 입사 5년 만에 초고속 승진을 해 부장이 됐다. 직장 내 괴롭힘을 뼈아프게 겪었던 그는, 젊은 나이에 높은 자리에 앉은 그는 또 다른 ‘인턴 가열찬’을 막기 위해 노력했다. 어느 날 가열찬 앞에 인턴들이 등장했다. 그중에는 놀랍게도 경비 일을 하다 시니어 인턴으로 발탁된 이만수가 있었다. 악덕 부장이 인턴으로 온 날, 많은 직장인은 쾌재를 불렀다.

‘꼰대인턴’은 지금까지 직장인 드라마처럼 애환을 다룬다는 점에서 큰 궤를 같이하지만 감정적 문제를 들여다본다는 차이점을 지닌다. 직장인 노동을 조명한 드라마가 대중적으로 관심을 얻은 건 tvN에서 2014년 방송된 드라마 ‘미생’부터다. 주로 비정규직 문제를 다뤘다. 이곳에서는 학벌 등 스펙을 중심으로 서열이 정비됐고 기준에 미달하면 인턴 과정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였다고 해도 비정규직에 간신히 안착하는 정도를 ‘파격’ 대우로 여겼다. 여성과 비정규직, 그러니까 약자들은 매 순간 차별과 마주했고 유리천장 문제도 이들을 향했다.

‘미생’이 성공을 거둔 이후 직장 내 애환을 다룬 작품이 잇따라 등장했다. 지난해 방송한 tvN ‘쌉니다 천리마마트’는 지금의 현실에는 없지만 있어야만 할 노동환경을 조명했다. 배경은 다소 엉뚱하다. 정복동(김병철)이 좌천돼 그룹 유통계열사인 천리마마트 사장에 부임하면서 복수를 꾀한다. 이곳을 완전히 망치면서 본사에 해를 미치겠다는 생각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회사에 해가 되는 일은 노동자에게는 득이 되는 선택이었다. 정복동은 정규직을 대거 채용하면서 스펙은 전혀 따지지 않았다. 원시 부족 ‘빠야족’ 전원, 해고된 대리기사, 가난한 음악가, 아빠를 잃은 초등학생이 천리마마트에 입사했다. 인종도, 나이도, 성별도 중요하지 않았다. 정복동은 온종일 서서 일하는 카운터 직원을 위해 최고급 온돌을 깔았고 경영난을 겪는 납품업체에 대금을 3배 인상하는 가하면 마트 한구석에 오락실을 만들어 모든 이에게 무료로 개방하기도 했다. 이주 난민인 ‘빠야족’이 경찰서에 붙잡혔을 때도 거금을 들여 이들 모두 안전하게 마트로 돌아올 수 있도록 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