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울린 15일… 플로이드 고향땅 묻힌 날도 분열 부추긴 트럼프

입력 2020-06-10 17:38
9일(현지시간) 조지 플로이드 장례식에서 오열하는 유족들. AP연합뉴스

인종차별 항의 시위의 상징으로 떠오른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9일(현지시간) 미국 백인 경찰관의 과잉 제압으로 숨진지 보름 만에 고향 땅 텍사스주 휴스턴에 잠들었다. 그의 죽음으로 촉발된 시위가 미국을 넘어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장례식 당일에도 어떠한 추모 발언 없이 분열을 부추겼다.

플로이드의 유족은 이날 오전 휴스턴 ‘찬양의 샘(Fountain of Praise)’ 교회에서 장례식을 열었다. 500명의 조문객이 참석했고 경찰 폭력에 희생된 또 다른 흑인 사망사건의 유족들도 자리를 함께 했다. 순백의 옷을 차려 입은 동생 로드니는 “전 세계가 형을 기억할 것이고, 그가 세상을 바꿀 것”이라며 흐느꼈다. 장례식 장면은 TV와 인터넷으로 생중계돼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플로이드 추도식을 주관했던 흑인 인권 운동가 알 샤프턴 목사는 추모사를 통해 “평범한 형제, 조지 플로이드. 당신의 목이 우리 모두를 대표하는 목이었고, 당신이 어떻게 고통받았는지는 곧 우리의 고통이었다”며 “당신의 나라 미국은 형제의 이름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례식을 마치고 플로이드가 잠든 관은 그의 어머니가 묻힌 휴스턴 외곽 메모리얼 가든 묘지로 향했다. 메리 화이트 목사는 추도사에서 “플로이드가 숨지기 직전 ‘엄마’를 외친 순간 이 나라 모든 어머니가 그의 울음을 듣고 우리의 아이와 손자를 위해 통곡했다”고 말했다. 휴스턴 시는 이날을 ‘조지 플로이드의 날’로 선포했다.

미국에서 과도한 공권력 집행으로 흑인이 목숨을 잃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플로이드의 죽음은 유독 백인 밀집 대도시와 지방까지 포함해 미 전역을 흔드는 대규모 시위로 확대됐다.

영국 BBC는 이날 플로이드가 숨지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찍힌 영상, 코로나19로 인한 대량실업 사태, 코앞으로 다가온 대선을 시위 확산의 원인으로 꼽았다.

인권활동가 프랭크 로버츠는 BBC에 “이전 흑인사망 사건들과의 차이가 있다면 참혹한 영상을 통해 사람들이 명백한 불의의 행위가 있었고, 플로이드가 비무장 상태에서 무력화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영상 속에서 플로이드가 죽기 전 내뱉은 “숨 쉴 수 없다”는 절규는 흑인이 겪는 구조적 인종차별의 무게를 있는 그대로 담아내 대중의 분노에 기름을 끼얹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이동제한령이 내려져 더 많은 시민들이 꼼짝없이 집 안에 갇혀 TV뉴스를 시청하면서 분노가 확산됐다는 점, 코로나19 실업사태로 평소보다 많은 이들이 쉽게 시위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는 점도 원인으로 지목됐다. BBC는 대선을 반년도 남기지 않은 시점이라 정치인들이 사회현안에 더 큰 관심을 갖고 대응할 가능성이 높아진 점도 시위를 확산시켰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돌연 인종차별 항의 시위에 참석했다가 경찰에 밀려 머리를 다친 70대 노인 마틴 구지노에 대한 음모론을 펼쳤다. 그는 트위터를 통해 “넘어진 거 자체가 설정 아니냐”며 “극좌 안티파의 앞잡이일 가능성이 있다”며 주장했다. 플로이드 장례식 날조차 통합과 치유 메시지가 아닌 이념갈등 조장 발언을 내놓은 셈이다.

반면 대선 경쟁자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통합의 리더십 부각에 힘쓰며 극명히 대비되는 행보를 보였다. 그는 장례식장에 보낸 영상 메시지에서 플로이드의 딸 지애나를 향해 “아빠가 세상을 바꾸게 될 것”이라며 “많은 흑인 아이들이 대를 이어 물어왔던 ‘아빠는 왜 떠났나요’라는 질문을 이제 어떤 아이도 하지 않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영혼을 찔러 상처를 내는 인종차별을 다시는 외면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